논설주간칼럼
[행림회춘]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박수 받으려면
  • 성철환 논설주간(cwsung@sisajournal-e.com)
  • 승인 2018.06.27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앞두고 기대와 우려 교차…의결권 자문사 제 역할 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 절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채 1개월도 남지 않은 가운데 강화될 주주권 행사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어떤 환경에서 시행되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투자대상 기업을 제대로 감시하고 의결권 행사를 통해 총수 등의 일탈행위를 견제함으로써 기금 위탁자인 국민과 투자자들의 이익을 지켜내기위한 행동준칙이다. 주주권 행사가 강화될 수 밖에 없고 고객의 이익보호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민연금의 속성 탓에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위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문제의 성격이 좀 다르지만 2년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보인 행태는 정치권에 휘둘려 국민연금이 얼마나 파행적인 행태를 보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당시 합병은 추진할때부터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찬성 의결권을 행사했다.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지원에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훼손해 부당하게 동원됐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됐고 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 관련자들이 사법처리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민간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의사 결정에까지 과도한 경영 간섭이 횡행할 소지도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말현재 626조원이 넘는 전체자산중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돈만 131조원에 달한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만 299곳에 이른다.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업의 운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이 과정에서 기업의 일탈을 막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겠지만 자칫 미래를 위한 올바른 선택에까지 제동을 거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제기된 사안을 다룸에 있어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투명한 의사결정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정부의 입김을 차단하고 주주권 행사에서 전문성을 높이기위한 방안으로 일본공적연금(GPIF)처럼 주식 운용부터 의결권 행사 책임과 권한까지 모두 위탁운용사에 위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주식 위탁운용을 맡은 자산운용사들이 재벌과 출자나 거래 관계 등으로 얽혀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할때 적절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설령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다하더라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걸림돌이 될 소지가 큰 때문이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하기위한 방안으로 의결권 자문사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싶다. 현대모비스 분할 합병 시도 과정에서 전개된 일을 되짚어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주주들에게 앞다투어 반대를 권고하고 나서면서 현대모비스 지분 9.8%를 보유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권 행사 또한 불투명해지는 상황을 맞았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5월 21일 기존안을 후일을 기약하며 철회했다.​의결권 자문사들이 자칫 큰 후유증과 논란을 빚을 만한 논의를 매듭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더 이상 논란은 없었다.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던 삼성물산 합병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국내 자문사들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사실 국내 자문사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국내 의결권 자문시장 규모는 1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정도다. 국내 자문사들이 소요 전문 인력을 넉넉히 확보하고 기업으로서 건강하게 성장하며 미래를 기약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은 대부분의 연기금이 의결권 자문을 받고 있고 그것도 복수의 자문사에서 의견을 구하는 일이 흔하다. 국내에서는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중에서 의결권 자문을 받는 곳 자체가 적​을 뿐더러 그나마 받는 보수조차 턱없이 낮다. 당국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조속한 정착을 바란다면 자문시장을 건강하게 발전시킬 방안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의안 분석과 의결권 자문의 기본 인프라가 되는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평가가 내실화될 수 있도록 차제에 시장구조 개선에도 강력하게 나서야 한다. 국내 사회책임투자(SRI)를 주로 감당하는 국민연금이 정작 질 높은 ESG 평가 정보가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다. 원청인 재벌기업의 갑질뿐아니라 1차 협력업체의 2·3차 벤더를 상대로한 갑질이 큰 문제가 되듯이, 위탁운용사들이 ESG 평가 자문사들에게 수수료 후려치기 등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국민연금이 직접 감시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같은 일도 예상되는 문제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해 얼마나 꼼꼼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국민이 신뢰할만한 주주권 행사를 담보할 보완 장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효과는 제약되고 연금사회주의 논란 등 부작용만 잔뜩 부각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철환 논설주간
성철환 논설주간
cwsung@sisajournal-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