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내부 문서 넘겨줄까 고심…미온적인 협조 시 ‘강제수사’ 명분 내줘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스1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 수사와 관련된 검찰의 광범위한 자료 제출 요구에 대법원이 일주일 가까이 고심 중이다. ‘수사협조’를 공언한 상황에서 요구받은 자료의 범위가 넓고, 법원 내부 행정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까지 검찰에 넘겨주게 될까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지난 19일 법원행정처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재판 거래와 법관 사찰 의혹에 관련된 전·현직 법관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업무용 휴대전화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사건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 연루자들의 하드디스크에는 수 만 건의 관련 문서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또 의혹 문건을 작성하고 보고한 법관들의 공용 이메일 주소와 내부 메신저 기록,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 관용차 사용기록도 요청했다. ‘재판 거래’가 실제로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선 의혹 당사자의 동선과 업무 지시내용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양 전 원장을 만나기에 앞서 임 전 차장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특별조사단이 지난 2월부터 임 전 차장 등 법원 관계자 49명을 대면이나 서면 조사했던 내용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진실규명을 위한 것으로 (법원이) 정해준 범위로 필요한 작업을 한정할 수는 없다”라며 자료 요청 배경을 설명했다.

‘수사협조’를 공언한 대법원은 속내가 복잡하다. 이번 의혹과 무관한 사법행정 관련 내부 문서까지 검찰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대법원의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거론된다. 또 이메일 등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이유로 임의제출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온적인 수사협조는 압수수색 등 검찰의 강제수사에 명분을 실어줄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24일 “자료제출을 준비 중”이라는 형식적인 입장을 내놓으며 “방대한 제출을 요구 받은 입장에서 임의제출이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등 여러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법원이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동안 검찰은 연일 고발인들을 소환 조사하며 대법원을 압박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법원노조) 조석제 본부장을 고발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인 조승현 방송통신대학교 교수에 이은 3번째 조사다.

조 본부장은 이날 조사에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까지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검찰에 얘기할 예정”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수사가 제대로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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