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타격 가하자 제안받았지만 거부…검사로서 불법·부당한 개입 안 해”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지난 2009년 6월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포함해 전체 21명을 기소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 부분은 내사 종결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수사 지휘한 이인규(사법연수원 14기)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두렁 시계’ 보도 배후에 국정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직원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자고 제안했으나 이를 거부했고, 검사로서 불법·부당한 개입을 한 사실이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 전 부장은 25일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저를 포함한 검찰 누구도 이와 같은 보도를 의도적으로 계획하거나 개입한 사실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사 내용은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기 전에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보도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검찰이 의도한 바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저에게 직원을 보내고, 임채진 전 검찰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다”면서 “(저는)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검사로서 소임을 다했을 뿐이고, 만일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의 ‘논두렁 시계’ 보도 개입과 관련된 이 전 부장의 주장은 이렇다.

앞서 대검 중수부는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수사하면서 ‘2006년 9월경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이하여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원에 구입해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며, 그 후 2007년 봄경 청와대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만찬을 할 때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년 30일 검찰 조사에서 ‘권 여사가 시계 세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언론에서 시계수수 사실이 보도된 후에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이 전 부장은 전했다.

이 전 부장은 또 “검사가 (노 전 대통령에게)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피아제 시계를 증거물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자 ‘언론에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되고 난 후에 권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고 답변하면서 제출을 거부했다”면서 “이와 같은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됐고, 조서로 작성됐다. 노 전 대통령이 서명 날인한 조서는 영구보존문서로 검찰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해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검찰 수사가 종료돼 해당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전 부장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그를 찾아온 시점은 2009년 4월 14일이다.

이 전 부장은 “퇴근 무렵 국정원 직원 2명이 사무실로 찾아와 ‘원 전 원장의 뜻이라며 부정부패 척결이 좌파를 결집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면서 “제가 화를 내며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고 강하게 질책하자, 국정원 직원은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또 “원 전 원장은 임채진 전 검찰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같은 제안을 했다가 거절 당한 적이 있다”면서 “2009년 4월 22일 KBS 저녁 9시 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시계수수 사실’ 보도를 접하고 국정원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원 대변실이 개입해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해 5월 13일 SBS에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라는 보도 역시 원 전 원장과 SBS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볼 때 SBS 보도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혔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장은 지난해 11월에도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원 전 원장이 ‘논두렁 시계’ 보도의 배후라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자 재차 반박에 나선 모양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지난해 국정원 간부들이 이 전 부장을 만나 시계 수수 건을 언론에 흘려줘 적당히 망신을 주는 선에서 활용해달라고 언급한 것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지시 및 실행의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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