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박진혁 전 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 “국내 완성차업체, 결함 인정하고서도 리콜 안 해”…“공단 내 카르텔과 텃세 못 이겨 나왔다”

촬영·편집=김률희 PD

 

박진혁 전(前) 교통안전공단 결함조사실 책임연구원은나는 단지 조사를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박 전 연구원은 지난 2015년 8월 5일 13년간 근무했던 공단을 떠났다. 박 전 연구원은 자신의 인생을 걸며 청춘의 대부분을 공단에서 보냈지만, 떠날 때 돌아온 건 내부 사실을 알리지 말라협박뿐이었다고 했다.

박 전 연구원은 한 번 발견한 자동차 결함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는 게 주위 평가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 독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결함에 대한 집요함 동료 연구원들의 눈총을 샀고 어떻게 해서든 결함을 밝혀내려 했던 자신과 달리, 공단은 오히려 결함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박 전 연구원은 지난 2011년 한국GM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윈스톰의 바퀴잠김식 제동장치(ABS) 결함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신고 차량을 직접 몰고 브레이크를 밟자 차선을 이탈할 정도로 쏠림 현상이 심했다. ABS 모듈레이터를 뜯어보니 부식이 발생해 있었고콘티넨탈사(社)에서 만들어진 불량 제품인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시사저널e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불량 제품은 당시 국내 4개 완성차 모델에 적용됐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윈스톰 ABS 결함 최초 발견 시점이 언젠가.

2011년 11월 경으로 기억한다. 제동장치가 작동 불량 때문에 조사를 시작했다. 윈스톰 차주에게 차를 받아 여의도에서 경기도 화성 송산면 연구원에 직접 차를 가지고 내려왔다. 연구원에 시험로가 몇 개 있는데, 그중에 직선로라고 직선에서 시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위촉연구원에게 동영상을 찍으라고 하고 시속 100에서 급제동을 하니 차선을 이탈할 정도로 차량이 쏠렸다.

 

정식 조사를 해보니 어떤 결함을 발견했나.

제동장치 중에 ABS 모듈레이터라고 브레이크를 잡았다 놓았다 하며 안전하게 제동을 돕는 장치가 있다. 그 장치 내부에 밸브가 있는데, 밸브가 부식이 된 것을 확인했다. 한국GM 관계자들과 차선이탈 현상은 물론, ABS모듈레이터 부식을 같이 확인했다.

 

ABS 모듈레이터 부품 제조사가 어디인가.

ABS 모듈레이터를 만드는 회사는 전 세계 얼마 없다. 만도, 보쉬TRW, 콘티넨탈 등이 있는데, 콘티넨탈에서 만든 모듈레이터다.

 

당시 윈스톰을 제외하고 콘티넨탈사 ABS 모듈레이터 제품이 적용됐던 모델은?

한국GM에는 동일 제품이 들어간 차량이 4개 더 있었다. 윈스톰을 비롯해 마티즈, 젠트라, 토스카, 라세티 등이다. 한국GM 측은 동일 ABS 모듈레이터를 사용하니 추가로 리콜 의사를 밝혔고, 몇 개월 후 4만5000대를 더 리콜했다.

 

동일 제품이 다른 완성차업체에도 적용됐을 수 있었을 텐데.

당시 결함조사실장 지시로 불량 ABS 모듈레이터 제품이 한국GM에만 들어갔는지, 다른 업체 차량도 대상이 되는지 내가 주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제네시스BH와 에쿠스IV 2008년식 이후, 쌍용자동차는 체어맨W, 르노삼성자동차도 SM3, SM5, SM7 35만대가량을 찾아냈다. 모두 2008년께 생산된 차량들이었다.

 

왜 당시 윈스톰만 리콜이 됐나.

윈스톰을 리콜하고 나머지 제작사분들과 계속 회의를 하고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결함 현상이 있으니까 리콜을 해야 하는데 제작사 측에서 리콜을 안하는거다(리콜을) 강하게 압박했음에도 계속 문제없다혹은 봐줘라이런 식이었다.

 

당시 제작사와 만나서 회의를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내 기억에는 당시 자료를 요청하면 자료가 잘 안 온다. (자료를 요청하면) 15일 안에 제출하게 돼 있다. 자료 제출을 안 하면 불이익을 줘야하는데,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회의는 못 해도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은 했다.

 

완성차 업체에서는 누가 참석했나.

대체로 품질이란 단어가 붙는 부서의 부장급이 참석했다. 이름은 밝힐 수 없다.

 

 

박진혁 전 교통안전공단 결함조사실 책임연구원. / 사진=김률희 PD

이후 다른 차종도 있는데 굳이 제네시스와 에쿠스에 집중했다.

제작사가 (결함을) 인정했는데 말만 하고 리콜을 안 하니까 다른 제작사 담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동차 결함신고센터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마침 전주에서 제네시스 문제가 있었다. 그 전화를 받자마자 전주로 내려갔다. 전주 현대차 직영 AS 센터였다. 그리고 당시 윈스톰과 동일한 현상을 발견하고 리콜 조사 건의를 했다.

 

당시 현대차와 리콜에 대해 어디까지 얘기가 진척됐었나.

결함을 인정했고 리콜을 한다고 했었다. 구두로. 딱 그 타이밍에 인사이동이 이뤄졌다.

 

인사이동과 함께 제네시스 및 에쿠스 결함조사에서 빠지게 된 건가?

인사이동 후에 업무분장을 했다. 그러면서 윈스톰은 그대로 내가 맡고, 제네시스 업무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게 됐다.

 

그렇다면 인사이동 후 제네시스 결함 관련 문제없다는 결과가 나왔나?

제네시스 결함 조사 지시가 내려오고 현대차와 우리 연구원이 공동 조사를 했다공동조사 합의를 하고 공동조사를 한다. 공동조사를 이틀 동안 했다. 차선 이탈은 라바콘 조그마한 걸 일정 간격 둔다100에서 급제동을 하고 차선이 이탈하면 라바콘을 건든다. 조사를 옆에서 지켜본 뒤 그 여부를 녹화 영상을 통해 다시 보니, 실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내가 보기에는 차선을 이탈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제네시스 조사를 책임졌던 연구원이 ‘차선 이탈이 없다​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차선 이탈했는데 안 했다고 하니 너무 화가 났다. 나도 조사자니까 직접 타서 몰아보니 여러 번 차선을 이탈했다. 당시 책임 조사관과 이 사안을 두고 여러 번 싸웠다.

 

제네시스 주 조사관이 결함 없다고 주장한 근거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100번 시험하면 3,4 번은 이탈할 수 있다는 거다.

 

연구원에서는 현장 조사자가 결함이 없다고 보고하면 관련 사안을 알 수 없는 구조인가.

그렇다.

 

201585일 교통안전공단을 나오게 됐다.

나는 조사를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열심히 했고. 늘 생각할 때 정말 나는 현장조사를 잘 하는구나 리콜조사를 잘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문제가 있으면 리콜을 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내가 제네시스 결함 관련해서 미국도로교통국(NHTSA)에다 신고를 하게 되고, 그걸 연구원에서 알게 돼 경위서도 썼다. 이렇게 되면서 연구원이 ‘나의 개인적인 결함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외부활동하는 것을 위에서 알고 있었고, 자동차공학회 임원인 것도 알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내가 보고를 안 한 것처럼 됐다.

업무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근데 위에서는 ‘너는 왜 조사를 이렇게 하려고 하냐​고. 현장을 가면 한 장 짜리 조사서만 작성하면 되는데 나는 현장조사 나가면 후배들을 위해 기록을 남기려고 최소한 5장, 10장 정도로 정말 열심히 조사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남겨놔야 후배들이 내 전자결제를 보고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사를 하면 반려시키고, 조사를 못하게 하고, 자료 요청을 10개 하면 너는 왜 이렇게 많이 하냐. 이런 것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내가 자동차 검사 기술직에서 연구원으로 전직을 해서 왔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석사, 박사들이어서 기술직 출신에 대한 텃세가 심하고 카르텔도 있다.

 

 

박진혁 전 교통안전공단 결함조사실 책임연구원. / 사진=김률희 PD

경위서를 세 차례 썼다.

하나는 제네시스 관련 미국 NHTSA에 신고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동차사고기록장치(EDR) 관련해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당시 참석자분들이 자료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그랬더니 내부에서는 자료유출이라고 경위서를 쓰게 했다.

나머지 하나는 개인적 욕심이 좀 과했다. 내가 2015년 5월 12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사실 나는 교통안전공단이니까 국토교통부 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말 잘 듣는 애들한테만 상을 주고, 기술직 무시하는 것도 싫었다. 나도 욕심이 있다 보니 산자부 장관상 공적 조서를 작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윗선 확인자의 도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장을 관리하는 여직원에게 도장을 얻어 직인을 찍었다. 상을 받은 다음날, 위에서는 도장 찍은 행위가 사문서 위조라며 압박했다.

 

공단 내에서 인장을 갖다 쓰는 게 특이할 만한 일이었나.

연구원의 여직원이 모든 도장을 관리했다. 통상적인 거다. 요청하는 주는 거다. 근데 당시 허락을 안 받고 썼다는 거고, 그 여직원은 절대 도장을 안 줬다는 거다. 연구원에서는 나의 개인적인 활동을 다 싫어했다. 나를 미워하니까. 그래서 개인적인 공적을 노출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인장은 허락을 받고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욕심이 과했다.

 

이후 어떻게 됐나.

2015년 5월 이후 모든 사건에서 배제가 됐다. 그리고 2015년 8월 5일자로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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