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감시’ 중견기업 이상으로 확대해야

지난 19일 한국산업조직학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조연설자로 나서 임기 3년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일감몰아주기 해소’를 꼽았다. 대기업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 관행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인데, 특히 ‘비주력‧비상장’ 계열사를 상대로 “왜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보유한 비주력‧비상장 계열사는 편법승계의 도구로 흔히 쓰인다. 오너 자제들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그룹 계열사들이 총 동원돼 일감을 몰아줘 기업 가치를 띄운 다음, 지주회사와 합병하는 등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

일감몰아주기 감시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포는 사실 김 위원장의 취임할 당시부터 재계에 확산되고 있었다. 최근 대기업 총수 일가가 잇따라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합병하는 것도 ‘재계 저승사자’로 통하는 김 위원장의 등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정위의 인력 한계 등으로 일감몰아주기 감시는 대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사각지대에 있는 중견기업들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중 특수관계인 지분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사를 대상으로 일감몰아주기 적법성 여부를 검토하는데 내부거래 매출 규모가 200억원 혹은 매출 비중이 12% 이상이어야 한다.

규제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 자산 5조원 미만의 중견기업들은 ‘합법’이라는 미명 아래 도를 넘어선 일감몰아주기를 마치 오래된 관행처럼 여기 있고 당국 역시 묵인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해 초 발표한 대규모기업집단 외 일감몰아주기 현황을 보면 모 중견기업의 계열사의 경우 내부거래 비율이 99.35%에 달한다. 거의 모든 일감이 계열사가 몰아줬다는 의미다.

이들은 합법이기 때문에 일감몰아주기를 해소할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대기업에게는 저승사자로 통하지만 이들에게는 먼나라 얘기에 불과하다. 최근 기자에게는 한 중견기업으로부터 이런 항의가 들어왔다.“저희는 일감몰아주기와 전혀 관계없습니다. 단순히 투자 전문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등기부등분을 살펴본 결과, 투자 외에도 상품매매, 수출입무역, 전자부품제조판매 등이 사업목적으로 기입돼 있었다. 계열사로부터 일감을 따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편법승계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달리 구분해선 안 된다.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부의 이전’과 ‘편법적 상속’을 감시하는데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것이 대물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에 편중돼 있는 일감몰아주기 감시를 중견기업 이상으로 확대하고 임기가 끝나도 지속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바짝 엎드린 업계의 움츠림이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식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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