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은 커녕 갈수록 악화되는 고용사정…고용의 주체로서 기업의 활력 되살릴 정책 고민을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일자리 질을 모범적으로 개선하면서도 일자리를 만드는 중소기업인이 애국자"라고 했다. 최근 인천의 중소기업현장을 방문해 중소기업인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백번 옳은 말이지만 새 정부가 과연 이런 인식을 실천해 기업인들이 의욕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일자리 사정이 나아지기는 커녕 갈수록 악화되는 현실을 볼 때 더욱 그렇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신규 취업자 수는 7만명을 약간 넘는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10년 1월이후 8년 4개월 만에 가장 부진한 수치다.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올 1월만 해도 33만명을 웃돌았지만 이후 4월까지 내리 10만원대에 머물더니 지난달에는 이 선마저 무너진 것이다.

청년 일자리 사정은 더 심각하다. 15∼29세 청년 실업률은 지난달 10.5%로 높아져 1년전보다 1.3%포인트나 치솟았다. 청년실업 통계를 내기 시작한 90년대말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학교라는 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둥지족. 나이 든 학생을 일컫는 노대딩, 졸업을 미루고 학교에 계속 머문다는 의미를 담은 NG(No Graduation)족이라는 자조적인 신조어가 대학가에서 유행하는데서 청년들의 실망감과 좌절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난해 5월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설치해 놓고 일자리 대통령으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곤혹스런 상황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국가 재정을 투입해 그나마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 분야와 보건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 신규 일자리를 늘리고 있음에도 일자리 사정이 나아지기는 커녕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도 공공부문에서는 22만개나 일자리를 늘렸다. 그럼에도 전체 일자리 창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은 결국 민간부문의 체력이 쇠잔해지고 있음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현상이다.

국민경제에서 생산과 고용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야할 보루는 다름 아닌 기업이다. 기업이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한다면 가계도, 정부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정부가 공급하는 국방, 치안, 교육 등 공공서비스와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도 민간의 생산활동과 소득창출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지속적인 재원조달이 불가능하다.


문대통령은 “일자리를 기업이 만든다는 것은 반만 맞는 말”이라며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부터 늘리겠다. 정부와 공공부문이 최대의 고용주”라고 밝힌 바 있다.하지만 세금으로 재정수요를 뒷받침할 수 밖에 없는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리면 국가의 재정부담도 덩달아 커지기 마련이다.

 

지난 3월 공개된 '2017 회계연도 국가결산'에서는 국가부채가 지난해말1556조원으로 전년보다 123조원이 늘어 사상최대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가 적자를 메워주기 바쁜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93조원이나 폭증해 국가부채 증가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금충당부채 규모는 846조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공무원 등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당장의 급여뿐 아니라 미래에까지 부담을 늘리고 국가재정을 어렵게 하는 비용이 불가피함을 외면해선 안된다.

결국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민간부문에서 공무원 부럽지 않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최선의 일자리 정책이다. 민간 기업의 투자 의욕을 부추기지 않고는 고용쇼크의 악순환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저임금노동자와 가계의 임금과 소득을 늘려 소비를 증가시키고 기업 투자 및 생산확대를 유발함으로써 다시 근로자의 소득을 늘리는 선순환구조 조성을 경제정책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기본 개념이다.
 

하지만 노동 약자의 경제적 상황 개선에 도움을 주려는 최저임금 인상은 되레 있는 일자리마저 잃게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고용쇼크는 이런 역설을 숫자로 드러내 보였다. 시행이 코앞으로 닥친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도 근로시간 해당 여부 등을 놓고 현장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고용시장에 추가적으로 쇼크를 몰고 올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의도가 좋다고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말도 있다.선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정교한 대책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점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는 경제컨트롤 타워를 둘러싼 잡음도 사라져야 한다. 문제를 정확히 알아도 올바른 답을 찾는다는 보장이 없다. 하물며 문제에 규명과 진단조차 다른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기를 바라기는 어불성설이기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과 연이은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로 한반도에 불고 있는 평화의 훈풍은 북한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큰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려면 북한의 비핵화와 이에 따른 대북제재 해체 등 거쳐야할 과정이 한참 남아 있다. 

 

얼마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정부·여당에 힘을 몰아줬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국민적인 성원과 기대, 구태를 벗지 못하고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 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바탕이 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평화의 성과는 가물가물한데 당장 일자리 등 경제상황 악화로 고통을 느끼는 국민이 늘어나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는 이번과 판이한 국민적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정부·여당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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