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노조, 차등 수수료 도입 주장…정부도 TF 구성 등 뒤늦게 대응에 나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카드업계가 계속되는 수수료 인하 압박에 울상을 짓고 있다.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카드업계가 계속되는 수수료 인하 압박에 울상을 짓고 있다. 정부 역시 최근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꼬인 실타래가 풀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카드사들의 수익률은 최근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업 카드사 8곳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2268억원으로 전년보다 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인해 카드사들의 순익은 지난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추세다.

지난 1분기 실적 역시 좋지 않다. 신한·삼성·KB국민·우리·하나카드 등 5개 주요 신용카드사들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3871억원으로 전년 동기 6774억원에 비해 2903억원(42.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카드 수수료 인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등은 서울 중구 삼성카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카드 수수료 인하를 촉구했다.

이들은 “카드사들이 2.5%라는 높은 카드수수료 이익을 챙겨 267만개의 가맹점이 힘겨워하고 있다”며 “수수료 인하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통을 카드사들도 함께 분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결제 수수료 제로’를 공약으로 내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나란히 당선되면서 수수료 인하 압박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선소감 발표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자리에서 공약으로 내건 ‘서울페이’에 대해 “올해 하반기에 이미 시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큰 어려움 없이 보편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페이는 QR코드를 활용한 결제 플랫폼이다. 스마트폰으로 가맹점 QR코드를 찍을 경우 구매자 계좌에서 가맹점 계좌로 돈이 이체되는 식이다. 중국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을 롤모델로 삼아 고안한 것으로, 결제 과정에서 신용카드 결제망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에 가맹점은 수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김경수 경남지사 역시 서울페이를 본뜬 ‘경남페이’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여기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카드 수수료 인하 관련 법안도 14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9건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의된 법안들이다.

카드수수료는 지난 2007년 ‘신용카드 체계 합리화 방안’이 나온 이후, 최근까지 총 9차례 인하됐다. 2012년부터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3년마다 수수료를 재산정하기로 했지만 우대수수료율 등은 감독규정 변경만으로 바꿀 수 있어, 사실상 수수료는 수시로 인하돼 왔다.

정부는 오는 7월에도 소액 결제가 많은 일반가맹점을 대상으로 수수료율을 평균 0.3%포인트 인하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카드 수수료 원가 중 한 부분인 밴(VAN) 수수료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꾸기로 했다. 결제 건별로 같은 밴 수수료를 소액 결제일수록 낮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방위적 압박과 관련해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전체 가맹점의 84.2%가 우대수수료율을 적용 받고 있다. 2.5%의 상한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가맹점은 267만개의 전체 가맹점 중 0.1%인 약 2700개에 불과하다.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사들은 현재 정부 눈치를 보며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소상공인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 카드사들과 여신금융협회는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실적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데도 수수료 인하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카드사 노조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달 30일 공동성명을 내고 정부의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과 관련해 차등 수수료와 업종별 하한 수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노조는 “카드수수료 인하책을 일괄적으로 실시할 것이 아닌 차등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영세상인에게는 인하하는 한편 재벌가맹점에게는 인상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전체 평균 가맹점 수수료율이 2%대임에도 카드 수수료가 재벌가맹점에 낮게 적용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대형마트 1.84%, 통신사 1.78%, 자동차 1.85%, 호텔 1.97% 등 대형가맹점들의 수수료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가맹점은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 매출의 80~90%를 차지하고 있지만, 시장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낮은 수수료를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도 최근 기획재정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부처들이 참여한 TF를 발족하고 관련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TF는 현행 카드수수료 제도 보완 및 근본적인 수수료 체계 개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또 TF 논의에 앞서 금융연구원 주도로 정책연구와 공청회도 추진한다. TF는 올해 말까지 카드수수료 종합개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뚜렷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 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카드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 간 카드업계는 카드 수수료 인하와 관련해 심한 압박을 받아왔다”며 “카드사들의 수익이 크게 감소하자, 정부가 뒤늦게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부 대응을 지켜봤을 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번 내린 카드 수수료를 다시 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특히 정치인들이 수수료 인하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만큼 추가 인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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