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특수성 이유로 묵인해온 장시간 근로 관행 해소 계기돼야

지난 8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콘텐츠 분야 노동시간 단축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현장에서 영상 콘텐츠 업계 종사자들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법 개정 전에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답변에 나선 정부 관계자는 뚜렷한 해법이 없어보였다.

 

이날 방송 영상 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처럼 촬영부터 편집, 방송 편성 등 일반적인 사무직과는 다른 특수한 업무 환경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촬영을 위해 빈번하게 전국 각지로 이동해야 하거나 촬영 준비를 위해 대기를 해야 하는 시간도 길다. 촬영 자체만을 두고 근로시간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촬영 작업 전에 해야 하는 어떤 업무까지를 근로시간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날 토론회에서 개정안 시행 이후 업계에서 방송 영상 제작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주 52시간 근무 가이드라인을 요구한 이유였다.

 

한국의 방송 영상 업계는 작가, 감독, 조연출 등 제작 인력의 역량에 의존해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노동집약적 방송 제작 환경으로 유명하다. 방송 제작에 참여한 방송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그만큼 보람도 크지만, 그 과정에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세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방송영상 업계에는 개인 사업자 신분의 프리랜서들이 많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이 보호하는 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들을 빈번하게 겪는다. 방송작가만 해도 그렇다. 식비를 제공받고 휴식을 취하는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으려면 성격 좋은 방송사 PD를 만나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더 빠르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해에는 한 방송사가 방송작가에게 임금으로 현금 대신 상품권을 지급했다는 논란도 나왔다. 모두 업계의 특수성이자 관행이라며 행해진 일들이었다.

 

방송업계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한빛 PD의 가족들은 지난 5SBS 앞에서 한 주말드라마 스태프들이 하루 2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노동 시간에 시달렸다며 방송계의 축적된 문제 탓에 제작환경 개선이 요원하다며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tvN에서 방송된 드라마 화유기제작 스태프가 새벽에 무리하게 방송 세트를 수리하다가 추락한 사고처럼 여전히 방송 영상 현장에서는 누군가 죽고 다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이 업계가 해결하지 못하고 고질적으로 안고 온 특수한 문제들이다.

 

방송 업계를 중심으로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통해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업계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없어 혼란이 야기된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물론 업계마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일괄적으로 개정안을 시행하는데 발생할 어려움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개정안이 본래 취지대로의 효과를 내고 시행 이후 제도의 안착을 위해 여러 지원책과 개선안 등을 내놓는 것은 정부의 몫이 될 것이다.

 

다만 이번 주 52시간 근로 시간 단축법 시행을 계기로 업계의 특수성을 이유로 당연시해온 과도한 노동 관행은 돌아보고 개선에 나서는 것은 업계의 몫이다. 방송 영상 제작사와 방송사 모두 비정규직 근로 형태와 장시간 노동시간을 당연시해왔다는 점을 인정하고, 책임 회피 대신 이번 법 개정안의 취지대로 방송 영상 업계도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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