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뢰’ 아닌 ‘수사협조’에 무게…고발 안하면 “직무유기” 의견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국 법원 대표 판사들이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형사 절차를 포함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으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단에 법조계 전반의 관심이 모인다.


사법부가 고발의 주체가 되지 않더라도, 수사협조 등 그에 준하는 입장표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날 임시회의를 연 뒤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형사절차를 포함하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고 의결했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선언문상 형사절차는 수사, 기소, 재판을 의미한다”며 “수사를 배제해선 안 된다는 의미의 의결”이라고 설명했다.

다수의 각 지방법원 판사회의에서 성역 없는 수사와 진상규명이 의결되고, 외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법발전위원회에서도 과반 위원들이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김 대법원장의 입장정리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의 의견을 들은 뒤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조치 등 후속대책을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전국법원장들은 검찰 수사에 반대한다는 과반 이상의 의견을 냈다.

법조계는 김 대법원장이 ‘수사의뢰’는 아니더라도 ‘수사협조’ 등 그에 준하는 입장표명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수의 고소·고발이 검찰에 접수돼 있고, 최종 판단자인 법원이 고발의 주체가 된다면 수사 기관과 사건을 담당할 재판부에 미리 유죄의 심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법관대표회의에서도 ‘대법원장 명의의 검찰고발’을 주장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향후 수사와 재판에 부담만 줄 수 있다는 이견이 있어 입장문에서 최종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수사개시를 결정하는 주체는 사법부가 아니고 검찰 등 행정부 소속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대법원이 수사협조 의사만 보이더라도 형사절차가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다. 사법부가 이번 검찰수사를 사법독립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선언하면, 검찰 입장에선 수사개시를 결정하는데 상당한 부담을 줄이게 된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주 말 쯤 사법부의 최종 대응방안을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사법부가 이 사건을 고발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는 소수 의견도 있다.

판사 사찰 피해자인 차성안 사법정책연구원(사법연수원35기)​은 자신의 이날 새벽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쓴 글에서 “법원이 직무상 조사과정에서 범죄혐의가 있다고 사료됨에도 법원의 사법행정권자 누구도 형사소송법상 고발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 판사는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판단되면 고발할 수 있고,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판단되면 고발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제234조)를 근거로 사법부가 고발의무를 저버리고 정무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게 판사들의 회의에 어울리는 모습인가. 그 결론은 또 얼마나 정무적이고 타협적인가”라고 한탄하며 “법원의 공식 조사도 있었고, 그에 따른 수사 필요성에 거의 공감하면서 형사소송법에 따른 고발의무를 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썼다.

이 밖에 피고발인 대표의 승인에 따라 수사 여부가 결정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대법원의 입장과 별개로 고소고발을 접수한 검찰이 수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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