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M 수입차 출시 열올리는 사측, 비정규직 대규모 인원감축 우려·직접고용 목소리 커져…국내 신뢰회복 위해 상생 길 찾아야

“저 전시장 안에 있는 쉐보레 이쿼녹스, 트래버스가 국산차입니까?”

지난 7일 오전 부산시 벡스코 제1전시장 앞에선 난 데 없는 질문이 울려 퍼졌다. 부산국제모터쇼 개막을 하루 앞두고 언론 사전공개 행사가 열리는 벡스코 전시장 앞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에 모자와 마스크를 쓴 한국GM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선전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국GM의 신차는 국산차가 아니라는 외침이었다.

한국GM이 활로를 찾기 위해 출시한 신차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이쿼녹스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주문자상품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전량 미국 본사에서 들여와 ‘무늬만 국산차’인 수입차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한국GM 비정규직 조합원은 한국GM이 선보인 신차를 두고 국산차가 아니라며 국내 공장가동률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황호인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도 정부 지원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일자리 위협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어서다. 공장가동률이 예전처럼 높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서 판매하는 신차마저 전량 해외에서 들여오는 까닭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일자리 위협이 목전에 닥쳤다고 본다.

 

희망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정규직과는 달리, 이들은 사내하도급 업체가 변경되는 방식으로 해고돼 왔다. 10년 넘게 라인 작업을 했던 근로자도 문자 한 통으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지난 4월 부평공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조합원은 “정상화 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부평공장에 근무하는 1200명가량의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 수 있다는 우려였다. 회사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매년 이뤄져 온 관례적인 수급업체 변경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엔 한국GM 창원공장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744명에게도 직접고용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한국GM은 2500명의 희망퇴직을 받는 등 인건비 절감에 나서는 가운데 700여명 비정규직의 거취를 정해야 한다. 

한국GM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비정규직을 직접고용을 하거나, 하지 않고 과징금을 물거나, 행정 소송을 진행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파리바게뜨 사태처럼 합작사를 설립해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도 제시되나, 사실상 경영 자금이 한정된 한국GM에게 녹록치 않은 선택지다. 행정 소송으로 이어지면 몇 달 혹은 몇 년씩 걸리는 장기간의 고용 불안이 또 다시 이들 비정규직의 몫으로 돌아온다. 행정소송이 길어지는 과정에서 재취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노사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의 말은 엇갈린다. 기자가 조언을 구했던 한 전문가는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아프지만 도려내야 할 부분”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내 업계 구조 상 높은 인건비로 인해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다고 봐서다. 너무도 쉽게 딱 잘라 말하는 그에게 누구의 ‘아픔’인지는 묻지 못했다. 정말 아프긴 하냐고도 따지지 못했다.​ 비정규직이 담보하는 노동유연성에 항상 이런 아픔이 동반된다면 그 아픔의 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해고된 비정규직은 재취업까지 정부 실업급여와 노조지부의 지원금 등에만 의존해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GM의 회생은 건강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차를 출시해 내수 실적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내부적인 결속력을 다지는 것도 시급하다. 최대한 많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철수설 여파로 바닥까지 내려앉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단순히 경쟁력 있는 신차를 많이 팔아치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한다는 큰 그림엔 회사와 근로자, 그리고 비정규직의 색깔이 고루 섞여 칠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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