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안팎에선 “비공개 문건 모두 공개하라” 목소리 나와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및 전국 법원장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전국 법원장들이 지난 7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형사고발이나 수사의뢰 조치하지 말자고 한 배경에는 비공개 문건 열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일부 공개된 비공개 문건에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안 처장)의 조사결과 상이하거나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며, 전체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 법원장 35명은 지난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25분까지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간담회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처 및 비공개문건 추가 공개에 반대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들은 재판 거래 의혹이 합리적인 근거가 없고 사법부에서 고발 및 수사의뢰 등 조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데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개혁을 ‘내부’에서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특히 법원장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410개 문건 중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문건들을 추가로 공개할 것인지도 논의했지만 ‘논란이 확산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의 410개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을 책임졌던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현 변호사) 등 행정처 관계자들의 업무용 컴퓨터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법원장들은 비공개 파일 대부분이 제기된 의혹과 관련성이 높지 않고 규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비공개 파일 공개를 꺼리는 법원장들의 심리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나마  공개된 일부 문건들이 특조단의 조사 결과와 상이하거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증폭시키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특조단은 지난달 25일 192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법원 내부 통신망에 게재하며 특조단이 확보한 410개 의혹 문건을 인용하는 식으로만 공개했다.

이후 일부 공개된 내용이 ‘(중략)’으로 생략돼 논란이 일자 특조단은 보고서에 인용된 90개 문건, 언론에서 추가로 의혹을 제기한 문건 5건, 추가조사위원회에서 조사됐다는 이유로 특조단 보고서에 인용되지 않은 문건 3건 등 총 98개 문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다만 특조단은 98개 문건 외에 ‘특정 언론기관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첩보나 전략’ 등 228개 문건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문제는 추가 공개된 문건들에서 새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세월호사건 관련 적정관할법원 및 재판부 배당방안’과 ‘BH 민주적 정상성 부여 방안’, ‘BH배제결정 설명자료’, ‘VIP 보고서’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 등아 대표적이다.

세월호 관련 문건은 법원이 국민적 참사를 ‘대외적 홍보’에 이용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고, ‘BH 민주적 정상성 부여 방안’ 문건은 상고심 판사 임명에 청와대가 사실상 임명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BH배제결정 설명자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시 청와대가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할 수 있는지 문의한 정황이 담겨 문제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이 구미에 맞게 사법부를 움직이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압박하기 위한 방안으로 메이저 언론사인 조선일보를 이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사단은 ‘조선일보 기사 일정 및 콘텐츠 검토’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 ‘조선일보 홍보전략’ 등 ‘조선일보’가 들어간 제목의 파일들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밖에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 및 대응 방향 검토’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장악력을 저하 상황을 법원행정처의 현안 해결을 위한 돌파 전략으로 구상한 내용이 포함됐다. 앞서 특조단은 이 사건을 두고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관계유지를 위해 ‘협력’한 사건이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전략’을 세워 정치적 상황을 현안 거래에 적극 이용하려한 정황이 확인됐다.

특조단은 ‘민변 대응전략’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등의 문건도 공개하지 않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던 특조단의 설명과 달리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거나, 특조단의 설명과 다른 내용이 나오자 비공개 문건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에 공식적으로 410개 문건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청했고, 전국 각급 판사 회의에서도 같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춘천지법 류영재 판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 안 된 문건들의 내용이 정상적인 업무처리 문건이 아닌 것 같다. 법원장만 볼 수 있고 국민은 못 보는 문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며 “문제가 있는 내용이라면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공개해야 하고, 문제가 없는 내용이라면 공개해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있는 문건 원문을 법관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모두 공개해야 한다”며 대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일절 공개하지 않은 문건 중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으로 의심되는 제목의 문건들이 다수 존재한다”면서 “특조단 조사의 신뢰도와 투명성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는 만큼 모든 문건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공개 문건 전면 공개 요구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의견을 모아 충분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아는데 나는 아직 모른다.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