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한 달 앞두고 대한항공 압박 눈길…‘5%’룰 딛고 기업경영 영향력 행사 움직임 본격
국정농단 사태로 ‘친(親)기업 거수기’의 오명을 썼던 국민연금이 새로운 재계 감시 기구로 등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오는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물론, 금융위원회에서 검토 중인 ‘5%룰’ 완화가 이뤄질 경우 국민연금의 재계 견제기구로서의 역할이 더욱 본격화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4일 대한항공에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 관련 질의 및 면담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이 서한을 통해 국민연금은 “최근 귀사 경영진과 관련한 여러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 사안에 대한 입장과 이를 뒷받침할 근거자료를 요청하며,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주사 한진칼의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의 이같은 행보는 특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나온 터라 더욱 눈길을 끈다. 국내 대기업들의 주식을 상당수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본격적으로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되는 탓이다.
특히 재계에선 스튜어드십 코드보다 금융위의 5%룰 완화 추진 움직임에 주목한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다 해도, 이를 적용할 범위 및 효과는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금융위가 5%룰을 풀어준 것을 바탕으로 경영권에 대한 국민연금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5%룰은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가진 투자자가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 5일 이내 주식보유 및 변동사항 등을 공시하는 규정이다. 그동안 보유목적이 ‘경영 참여’인 경우 주식 보유상황을 더 상세하고 신속하게 공시해야 해 기관투자자의 부담이 컸었는데, 이를 완화해 공적 연기금은 약식보고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금융위가 검토 중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입김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기업들은 벌써부터 긴장하는 눈치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현 정부들어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자 하는데, 국민연금까지 주주로서 경영에 본격 참여하면 또 다른 압박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시민단체 등에선 국민연금의 역할 확대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행사해 온 것”이라며 “공적기금을 다루는 주주로서 불법행위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이 275곳, 10% 이상 보유하고 있는 곳은 84곳에 이른다. 보유하고 있는 지분도 상당하지만 공적 연기금의 성격으로 볼 때 보유하고 있는 지분 이상의 영향력 행사도 가능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통한 한 대학 교수는 “공적 연기금은 단순히 주주가 아니라 주주들의 대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이 때문에 헤지펀드 등이 주주권을 행사하려 할 때 공적연기금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