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구경’ 비판에도 대법원 공식 협조 없인 수사 효용성 없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 시민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사진=뉴스1

양승태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지켜보는 검찰이 딜레마에 빠졌다. 이미 접수된 고발에 따라 수사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대법원의 공식적인 협조 없이는 선제적인 수사 착수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을 처벌해 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고발은 10여건에 이른다. 다수의 법조 단체와 시민단체들도 추가고발을 예고한 상태다.

검찰은 지난 1월 시민단체가 양 전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 등을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 배당하고 최근 발표된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보고서도 확보해 분석하는 등 내부 검토에 들어갔지만, 현재까지 수사를 본격화하지 못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대법원의 최종 입장 표명을 기다리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는 견해와 다수의 고발을 접수하고도 ‘강 건너 불구경 식’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상충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제3자가 아닌 대법원의 공식 고발이나 수사 의뢰 등 조치가 선행돼야 수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절차대로 수사를 시작하더라도 자료 확보 및 관련 법관 조사 등 현실적인 제약도 상당해 수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먼저 이번 사건 관련 자료 대부분이 대법원과 법관 인사를 관장하는 법원행정처에 있는데, 대법원의 명확한 의사 표명 없는 상태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데 어려움이 있다.

압수수색 영장이 나오더라도 협조를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통상 국가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관련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모두 뒤지는 방식이 아니라, 수사 대상 기관에서 건네주는 자료를 건네받는 식의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속도를 앞질러 갔다간 자료 확보조차 어려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사 대상이 우리나라 최고 법원과 소속 법관들의 직무상 행위에 대한 불법 여부 규명이라는 점에서 부담감도 상당한 눈치다.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사법부 내 질서’와 관련된 것인데, 왜 행정부 소속인 검찰이 나서냐는 지적과 이에 따른 사법부 내 비협조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삼권분립 위배와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으로 확산할 수 있어서 검찰도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대법원이 고강도 수사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뒤에야 수사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법원 내부의 직무와 관련한 사안인 만큼 수사를 할 경우 대법원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최소한 비공식적인 형태로라도 대법원에서 ‘협조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있어야 수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선 판사들, “성역 없는 수사” 잇따라 촉구 

 

한편 일선 판사들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잇달아 결의안을 내놓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는 이날 오전 총 83명의 판사 중 50명이 참석한 판사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전임 대법원장 재직기간 사법행정담당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재판 독립과 법관 독립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깊이 우려한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울가정법원 단독 및 배석 판사들도 같은 시간 단독판사 12명과 배석판사 8명이 참석한 판사회의를 열고 엄정한 수사 촉구를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의결했다. 이들은 특히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드러난 ‘미공개 파일’ 원문 전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1일 의정부지법 단독판사들은 조사단 발표 이후 처음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 한 바 있다.

이밖에 서울고법 판사들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배석판사들도 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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