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지니계수‧1인당 GDP 등 동‧서독 경제 격차 줄어…동독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서독에 대한 반감 커

 

1989102일 월요일 1915. 라이프찌히 니콜라이 교회 주변으로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주일 사이에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열 배로 늘었다. 규모가 커지자 군중 속에서는 공포감 대신 자유에 대한 열망이 진하게 피어올랐고, 사람들의 얼굴은 굳었지만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해는 저물어 거리의 가로등은 샛노란 조명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밑으로 시민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거리에는 자유를 달라며 행진하는 사람들과, 바닥에 흩뿌려진 수천 장의 전단지, 그리고 눈치를 보며 시위자들을 체포하는 경찰들이 모두 노란 조명 아래 한 폭의 유화처럼 번졌다.

 

지난 521일(현지 시간) 기자가 독일 라이프찌히 경영대 안뜰에서 만난 레기나(21)는 그의 아버지 경험을 토대로 29년 전 월요시위상황을 설명했다. 월요시위는 매주 월요일마다 열린 통일평화시위, 라이프찌히에서 시작돼 드레스덴과 플라우엔 등에 동독 전역으로 퍼졌다. 116일에는 라이프찌히에서만 50만명이 넘는 시위자가 몰릴 정도로 시위는 급속도로 확산하며 통일 독일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1989년 동독 '월요시위'가 촉발된 라이프찌히의 니콜라이 교회. / 사진=김성진 시사저널e 기자.

그러나 약 30년 전 매주 월요일 통일을 외쳤던 그녀의 아버지는 단지 민족의 통합만을 바라던 것은 아니었을 테다. 동독 주민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서독 주민들의 삶은, 가깝지만 멀리 있었기에 손을 뻗어 훔치고 싶은 삶이었다. 동독 주민들은 장벽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경제격차 또한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이다.

 

레기나의 아버지는 현재 버스기사로 근무한다고 한다. 조심스레 그의 연봉을 물었더니 레기나는 양 어깨를 들썩이며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 없을 정도라고 대답한다. 라이프찌히는 산업·인구규모·교육·인프라 등 여러 측면에서 동독의 가장 큰 도시로, 서독 주요 도시들과 견줄 정도로 성장했다. 레기나는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독 간 불평등을 피부로 느낄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빠르게 하나가 되어가는 독일

 

서독 지역 간 경제 불평등은 통일 당시와 비교해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동독 지역의 임금과 생활수준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지역 별 지니계수와 1인당 GDP(국내총생산) 등의 경제지표는 모두 긍정적인 신호를 나타내고 있다.

 

4월 뮌헨 ifo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독일의 지역 불균형 : 데이터는 무엇을 말하나?’라는 연구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동독은 서독과 비교해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뤄왔다. 20001인당 GDP 수준을 보면 대부분 서독 지역의 소득 수준이 높게 형성됐던 것과 달리,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인당 GDP의 상승 폭은 동독 지역이 가장 가팔랐다.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출처:뮌헨 ifo 경제연구소)

동독 지역이 빠르게 성장세를 보이자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역시 개선됐다. 동독의 지니계수는 2015년 기준 0.203 수준으로, 15년 전 0.220과 비교해 0.015 포인트 낮아졌다. 같은 기간 서독은 0.206에서 0.2040.002 떨어지는 데 그쳤다. 동독의 불평등 격차가 가시적으로 해소됨에 따라 독일 전체의 지니계수 또한 20000.215에서 20150.203 수준으로 나아졌다.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출처:뮌헨 ifo 경제연구소)

◇ “불평등은 동서독만의 문제 아냐”서독 지역에도 어려운 도시 많아

 

·서독 지역 간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동독과 서독으로 딱 잘라 판단할 수는 없다. 동독 지역의 브란덴부르크나 메클렌부르크 등을 보면 여전히 산업 개발 속도가 더딘 것은 맞다. 그러나 작센 주의 드레스덴, 라이프찌히 등의 도시들은 대부분의 서독 도시들보다 뛰어난 경제력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 서독 지역 도시들은 산업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르트무트 코쉭 독일 연방재무부 전 차관의 설명이다.

 

실제로 독일 북서쪽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70년대 이후 산업이 쇠퇴하며 현재까지도 경제적 부침을 겪고 있다. 보훔을 비롯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과거 주요 석탄과 철강산업으로 유명했던 도시들은 산업 쇠락 이후 지금까지 기지개를 켜지 못 하는 상황이다.

 

2018년 기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6.8%의 실업률을 기록하며 독일에서 실업률이 5번째로 높은 주로 나타났다. 독일 현지에서는 지역별 격차는 이제 더 이상 동·서 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통일 연대세를 동독이 아닌, 자신들의 지역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통일 연대세는 동·서독 간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한 세금으로, 1991년 독일 통일 이후 1년간 시범적으로 도입됐다. 이후 1995년부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1997년까지는 급여의 7.5%를 떼다가, 이후 5.5%로 고정됐다.

 

독일 드레스덴. 신시가지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모습. / 사진=김성진 시사저널e 기자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극복해야 할 문제

 

서독 사람들이 좋은 직업은 다 차지하고 우리들은 그 사람들 시중만 들고 있다. 서독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오만해서 꼴 보기가 싫다.”

 

지난해까지 메클렌부르크 주의 재활시설에서 일했던 기자의 지인은 주요 도시를 제외한 동독 지역에선 여전히 서독 사람들을 적대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에서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나이 든 세대들은 여전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은 심리적 격차가 경제 격차보다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옛 동독 지역 중에서도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을 비롯한 브레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여전히 독일 내에서 손꼽히는 낙후도시다. 2018년 기준으로 브레멘 주의 실업률은 9.8%로 독일에서 가장 높았고, 베를린과 메클렌부르크가 각각 8.1%, 7.7%로 뒤를 이었다. ·서독 격차가 예전과 같지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동독이 서독에 비해 가난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독 간 경제 격차가 실제 존재하다 보니, 일부 지역의 인식 변화 또한 어려운 모양새다. 지난 2015년 베를린 인구·개발연구소에서 발간한 통일은 이렇게 진행 중(So geht Einheit)’이라는 보고서에서는 동독과 서독 주민들이 여전히 서로에 대한 편견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독 주민들이 서독 주민들에 대해 갖는 반감이 큰 것으로 집계됐다.

 

요헨 슈타트 베를린 자유대 독일분단연구소장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독일의 동·서독 경제 격차 좁히기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간 실수도 많이 했다. 통일을 처음 경험하다 보니 무엇이 정석이고 옳은 길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새로 계획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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