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등에만 제한적으로 공개…‘국민 참여’ 배제된 사법행정 논란

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이 법조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국민담화문은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의 보수적인 행정처리 방식이 국민 참여를 배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지난달 5월 25일 192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법원 내부 통신망에 게재했다. 이 보고서는 또 같은 날 밤 10시 20분쯤 PDF파일 형식으로 법원 출입 기자단에게 공유됐다.

‘형사적 조치를 하지 않겠다’라는 특조단의 조사결과 이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역시 지난달 31일 오후 각 법관 이메일로 보내지거나 법원 기자단에게만 공개됐다.

김 대법원장은 ‘대국민담화문’을 ‘담화’ 없이 메일을 보내는 형식으로 갈음했다. 법원행정처 측은 기자들에게 “담화문 배포와 별도로 대법원장님이 카메라 앞에서 따로 하는 발표는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통보해 왔다.

모든 국민이 접속할 수 있는 대법원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새소식’ ‘보도자료/언론보도 해명’ ‘주요판결’ ‘포토뉴스’ ‘선고영상’ ‘공개변론’ 등 카테고리를 운영하며 법원 동향 등을 홍보하고 있으나,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관련된 보고서 및 담화문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들은 관련 기사나 법조계 관계자, 학자, 판사 등의 발언 등을 통해 파편적으로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 밖에 없는 셈이다.

이밖에 자료입수 방법으로는 사찰의 피해자인 차성안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개인 블로그에 게시된 문건을 확인하거나, 판사와 기자들과 친분이 있다면 부탁해 받아볼 수도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사정에 따라 10일 이상이 걸리거나, 청구 자체가 거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모든 방법은 비공식적이거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절차다.

차 연구위원은 해당 문건을 공개하면서 자신이 받는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쓴 글에서 “미확정 판결문 공개 문제로 특정 언론사 기자가 기자단의 제재를 받은 것처럼, 법원이 내부 구성원으로 열람을 한정한 자료를 국민에게 제공하면서 나도 두려움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행정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일규 전 대법관 추모식에서도 사법개혁을 언급하면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는 등 사법개혁의 주체인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국민에게 드리는 담화문이라 하면서 국민들에게 직접 말하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법 권력기관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특조단의 조사결과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정보 불평등에 따른 의심이 확산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이미 세월호 관련 문서 등 특조단이 공개하지 않은 문서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개된 문서들은 특조단에 의해 발췌된 것들이고, 언론과 일부 내부 법관에 의해 재공개되는 식의 공개 방식은 엄밀하게 말해서 국민에게 공개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또 “특조단은 ‘중요도 높은 파일의 누락은 없음’이라고 밝혔지만, 일체 공개하지 않은 문건 중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으로 의심되는 제목의 문건들이 다수 존재한다”면서 “특조단 조사의 신뢰도와 투명성에 관한 문제제기가 있는 만큼 모든 문건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영경 법인권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법 국민 참여의 기초는 정보가 공개되고 알려질 때부터 쌓인다”면서 “대법원은 정식 절차 및 헌법적, 법적 의무에 따라 공식적으로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 역시 “사법행정의 민주화는 국민들에게 다양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서 시작된다”면서 “국민 앞에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도 않고 조사단의 발표를 믿으라는 식의 태도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관은 정치인과 다르고 늘 국민 앞에 서서 의견을 밝히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 “기자들이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잘 요약하거나 전문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 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국민들과 기자들 사이의 정보 불평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특조단 등에 전달하겠다”라고 답변했다.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9시 출근길에 “조사보고서와 비공개 문건을 판사 외 국민에게도 공개할 수 있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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