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X 이후 노치제품 봇물…원가 높아 지속가능성 의문, 콘텐츠 활용에도 상대적으로 불리

서울 시내의 한 아이폰 매장에 노치 디자인을 적용한 아이폰X이 진열돼 있다. / 사진=뉴스1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에 이어 최근에도 아이폰과 갤럭시 시리즈를 비교하는 광고를 내놨다. 광고 속 주인공은 불편함만 자아내는 ‘느린 구형 아이폰’을 바꾸기 위해 애플스토어에 갔다. 이에 직원은 주인공에게 아이폰X(텐)으로 갈아타라고 말한다. 실망한 표정으로 나온 주인공은 애플스토어 앞에서 아이를 안은 한 남성과 마주치는데, 부자(父子)의 헤어스타일이 ‘노치’다. 스마트폰 상단이 움푹 파인 ‘노치’(notch) 디자인 말이다. 

경쟁사의 조롱거리가 된 셈이지만 사실 시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업계의 트렌드세터 격인 애플이 아이폰X(텐)에 도입하면서 바람을 탔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를 제외한 여러 제조사들이 노치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 오포와 비보는 노치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스마트폰을 이미 출시한 바 있다. 구글 역시 10월 공개하는 ‘픽셀 3’에 노치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LG전자의 경우 G7 씽큐에서 노치를 적용했지만, 검은색으로 설정하면 화면을 넓게 쓸 수는 있다.

애플은 차기 아이폰에서도 어떻게든 노치를 활용할 전망이다. 중앙에 전면 카메라와 3D 센서, 수신 스피커, 홍채인식 센서 등을 몰아넣고 양쪽 가장자리를 화면으로 채우는 방식이 유용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치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원가가 높아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 분석에 따르면 노치 디자인을 적용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비는 일반 패널보다 20% 이상 높다. IHS마킷은 아이폰X에 사용된 것처럼 노치를 적용한 5.9인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의 제조비를 29달러로 추정했다. 이는 갤럭시S9의 5.8인치처럼 노치를 적용하지 않은 풀(full) 디스플레이 OLED 패널보다 25% 높은 값이다.

이는 OLED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IHS마킷은 6인치 노치 TFT-LCD(액정표시장치) 패널의 제조비를 19달러로 추정했다. 이 역시 노치를 적용하지 않은 비슷한 크기 풀 디스플레이 LCD 패널보다 20% 높다는 게 IHS마킷의 분석이다. 제조 과정에서 디스플레이를 깎아내는 공정이 추가돼 원가가 오를 수밖에 없어서다. 공정의 추가는 수율, 그러니까 동일한 시간대에 만들어내는 제품의 양이 줄어들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애플 아이폰X의 출하량이 구형 모델보다 낮은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김현진 IHS마킷 디스플레이 소재 부문 선임 수석연구원(박사)은 “노치 디자인을 적용한 OLED 패널은 제조비 상승폭이 노치를 적용한 TFT-LCD의 경우보다 큰 것처럼 보인다”면서 “애플은 아직 완전한 제조비 최적화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값비싼 OLED 패널을 사용하는데, 이를 또 깎아내는 과정을 거쳐야하니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왜 지난 수개월 간 노치를 채택하는 제조업체가 늘었을까. 수수께끼를 풀 열쇠 중 하나는 바로 ‘애플이 시도했다’라는 데 있다. 아이폰이 프리미엄의 가늠자인 터라 이 흐름을 채택하는 게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최근 올해 노치 스마트폰이 3억대 판매될 거라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내년과 내후년에도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G7 씽큐에 노치를 적용한 LG전자는 내달 노치 디자인이 없는 OLED 스마트폰 V35를 내놓을 전망이다. 일종의 투트랙 전략이다. 또 중국 업체들도 독자적인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서 점유율이 커지면서 ‘카피캣’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되레 애플과 다른 길을 향할 수도 있다.

실제 28일(현지시간) 중국 IT(정보기술) 전문매체 기즈모차이나는 비보가 내달 12일 내놓는 베젤리스폰 ‘‘비보 넥스(Nex)’의 추정 이미지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 제품은 전면카메라를 하단 오른쪽에 숨겨 놨다. 덕분에 스마트폰 크기 대비 화면 비율이 99%에 달할 거라는 게 보도의 요지다. 역시 같은 중국 업체인 샤오미와도 90% 이상의 디스플레이 비중을 확보했다. 레노버도 내달 화면 비유링 95% 이상인 제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노치에 비해 베젤리스가 콘텐츠 활용 측면에서 장점이 또렷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가령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구동하거나 영상을 시청할 경우 소비자들은 가로로 눕혀 놓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노치 디자인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가격까지 더 높다.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늘어나는 등 소비자 선택을 받는 게 더 까다로워진 상황서 고가는 치명적 약점이다. 여러 각도로 볼 때 노치보다 베젤리스가 더 힘을 받기 좋은 업계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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