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일자리 늘리려 윗돌 뽑아 아랫돌 괴는 격…제로섬 게임 벗어나 일자리 총량 늘려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 희망퇴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퇴직금도 올리도록 권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친김에 희망퇴직을 잘하는 은행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외였다. 대다수 은행원들은 일자리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에서 희망퇴직이 점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복수의 은행원들이 “매년 희망퇴직이 되풀이됐지만 앞으로는 그 규모가 줄어들 것같다. 점포가 줄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일부 점포는 여전히 업무가 많은 데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금융당국 수장이 희망퇴직을 적극 권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 공기업도 퇴직금을 듬뿍 줘 희망퇴직을 유도하고 신규 인력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은 퇴직금을 줘서 내보내고 그 자리를 사회 초년병으로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진지한 대책이라 볼 여지가 없다. 단순히 윗돌 빼서 아랫돌을 괴겠다는 격이다. 금융위원회는 희망퇴직 확대를 일자리 창출 비책인양 은행장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부조차 중장년층은 일자리를 비워줘야할 대상으로 낙인 찍은 느낌이다. 하물며 금융 공기업은 이들을 내보기 위해서 국민 세금까지 써야할 판이다.  

 

희망퇴직 대상자인 은행 중장년층은 금융위 정책에 어떤 느낌일까. “돈을 많이 주니 이제 그만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할까.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이 든 사람 자리를 희망퇴직이라는 명목 하에 자리를 비우라고 압박하기 시작할 거다. 경영이 어려우면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는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 최근에는 당연시돼 왔다. 그러나 이 지경이면 정부는 일자리 늘리는 거에 실패한 거다. 

 

정부의 임무는 일자리를 빼앗아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 총량을 늘려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20~30대는 일자리가 없어서 많은 것을 포기한 N포 세대라고 불린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일자리에서 쫓겨난 후 가정을 지키기위해 갖은 좌절과 실패로 반복하는 또 따른 포기자들인 아버지의 비극적인 이야기도 들려온다. 

 

촛불혁명이 부르짖었던 것이 평등과 기회였다.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누군가의 일자리를 포기시키는 것이 평등과 기회에 합당한 일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구조적 모순을 끊기 위한 실험과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금융위는 일자리를 제로섬 게임의 경연장으로 만들고 있다. 끝이 빤히 보인다. 누군가를 밀어내도 얻은 그 일자리. 그들도 언젠가는 그 자리를 또 누군가에게 내줘야 하는 제로섬이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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