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위험 노출’ 제도만으로는 개선 한계…제조·유통 기업 의식 전환 필요

얼마 전 방송된 티비 예능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엄마와 함께 대형마트를 들어간 아이들이 식품코너로 곧장 뛰어가 바나나를 까고 먹기 시작한 것. 물론 아직 계산되지 않은 바나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옆에서 이를 태연하게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

이 엄마에게 비난이 쏟아졌을까? 전혀 아니다. 방송에 나온 이곳은 우리나라가 아닌 뉴질랜드였다. 뉴질랜드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는 ‘Free fruit for kids’(아이들을 위한 무료과일) 바구니가 설치돼 있는데 아이들이 이 바구니에 있는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성장기 어린이가 반드시 섭취해야 할 식품인 과일을 국가와 기업이 협업해 제공하고 있는 것.

2018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 전 세계 7개 국가만이 달성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린이들이 먹거나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의 안일한 태도는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국을 공포로 떨게 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불과 2년 전에 일이지만 생산, 유통 현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기까지 하다.
 

사실 어린이 관련 안전사고 위험 문제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었다. 다만 대형 이슈들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2년간 발표한 소비자 안전사고 관련 발표 중 어린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슈가 16건에 이른다. 1~2달에 한 번 꼴로 어린이 안전사고 이슈가 도마에 올랐다는 얘기다.
 

소비자원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안에서 조차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방향제, 세정제 등 어린이들이 집안에서 흔히 접촉할 수 있는 생활화학 제품에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화학물질이 일정액 이상 들어가는 모든 소비자제품에 흡입이나 음용이 불가능 한 어린이보호포장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정제, 코팅제, 접착제, 방향제, 부동액 5개 품목에만 이를 적용하고 있다. 실제 어린이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가루·에멀션·젤형 생활화학제품은 어린이보호포장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아이들은 장난감(피젯스피너)에서는 상해를, 놀이터에선 위생을, 어린이 음료에선 당류 함량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최근에는 전국 225개 유치원 실내의 라돈(1급 발암물질)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다.

어린이들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선 제도를 뜯어 고치는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잘못된 것은 반드시 개선한다’는 어른들의 확고하고 끈기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특히 철저한 검열과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실험에 많은 비용이 투입될 수 있기에 제조‧유통기업들의 의식 전환은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 더 이상 어린이들에게 버거운 대한민국이 되어선 안 된다. 어른들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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