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기억 건져 올린 3차 남북정상회담…‘한반도 신경제구상’ 현장서 취재할 날 오기를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11년 전 10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의 장면을 나는 학교 앞 백반집에서 봤다통일운동가를 꿈꾸던 포부 큰 8년 선배가 내 말동무가 돼줬다우리는 남북관계에 대해닥쳐올 17대 대선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던 그런 말들을 우리는 이어갔다그 사이 식어버린 뚝배기 속 찌개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금강산도 두 번 다녀왔다. 다니던 대학교서 보낸 ​금강산 기행단’ 소속이었다. 두 번째로 갔을 때, 그 유명한 옥류관 냉면을 먹었다당시 북측이 옥류관 금강산점을 개장한 덕이다가위를 달라는 말에 자르지 않고 먹어야 맛있다고 단호히 답하던 북측 안내원의 목소리가 여전히 또렷하다다소 심심하다고 느껴서 국물을 남겼는데그게 늘 미련으로 남았다.

 

돈만 생기면 남북관계 관련 서적들을 수집했다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도 수시로 찾았다지금은 비중이 작지만한때 내 서재의 절반 이상은 남북관계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혹은 동아시아 역사 서적들의 차지였다. 자연스레 학부 졸업논문 주제는 동아시아 공동체와 한반도 평화’가 됐다다시 읽으니 조악한 논리가 차고 넘쳐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래도 참 열심히 고민했었구나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와 다행이었다.

 

정권이 바뀌자 남북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금강산 피격사건이 났고 천안함이 침몰했다. 연평도에 울린 포성의 메아리는 TV로 들어도 두려움을 자아냈다. 이내 남북 사이에 험한 말들이 핑퐁처럼 오고갔다. 평화는 형체 없이 사그라졌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즈음, 대학원 입학을 결정하면서 정치학을 선택지에서 제외한 데는 그런 저간의 사정도 작용했다. 때마침 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영향도 있었다. 결국 ‘문화와 미디어로 한국사회를 연구하고 싶다’는 연구계획서를 내고 대학원에 갔다.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에는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기대감도 궁금증도 없었던 탓이리라. 대학원 재학 중 늦깎이 군 생활을 시작했다. 몸을 뉘인 곳이 군부대라 늘 긴장감이 엄습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북한’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금강산을 두 번 다녀왔다는 말에 딴 세상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을 건넨 한 영관급 장교를 잊지 못한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적 관심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아련히 사라져버리고 난 후였다.


전역 후 우연과 운이 겹쳐 경제 기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삼성의 지배구조와 반도체 시장, 때로 영화산업을 취재하면서 밥벌이를 했다. 취재차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경제계나 문화계 인사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남북관계나 한반도 평화와는 곁눈질조차 쉽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놓였다. 

하필 2018년 4월 27일은 당직 근무일이었다.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을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 두 편에 담는 역할을 맡게 됐다. 수일 간 마신 술로 몸은 노곤했는데 정신이 맑았다. 두 정상의 악수가 11년 전 백반집에서의 추억을 현실 위로 건져올려서다. 끊어졌던 필름이 복구되듯 한 장면 한 장면이 오롯이 떠올랐다. 아마 11년 전 나와 토론을 나눴던, 지금은 수년 째 소식을 모르는 그 선배도 그러했으리라.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날 저녁, 서점에 가서 이삼성 교수가 쓴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라는 두툼한 책을 샀다. 때 이르게 식어버린 내 지적 열정에도 재차 불이 지펴졌다.


새 화력을 얻은 열정은 경제 기자의 소박한 바람으로 이어졌다. 미지의 장막에 쌓인 북한 경제의 실제 모습을 취재하는 날이 오기를,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현장서 르포르타주 기사를 쓸 날이 오기를, ‘남북경제협력벨트’의 최전선에서 노트북을 펼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넘어야 할 험준한 둔턱이 아직도 여럿 남아있다는 걸 잘 안다. 문재인 대통령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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