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 불발에도 법무법인 열림 소속으로 개입 가능성 커

대한변호사협회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건을 수임한 ‘법무법인 열림’의 변호사법 위반 논란에 대해 별도의 유권해석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 변호인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변호사법 위반 조항에 저촉돼 수임이 불발된 상황에서 정 전 수석이 소속된 로펌까지 수임을 제한하면 변호사들의 변론권과 이 전 대통령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한변협 내부에서는 유권해석과 입장표명 여부를 두고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됐으나 ‘재판을 통해 유무죄가 결국 드러날 사건에서 야박하게 굴지 말자’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변협의 소극적인 태도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한변협 보다 더 질타를 받아야할 인물이 있다. 논란의 당사자인 정 전 수석이다. 정 전 수석은 2007년 BBK 주가 조작 의혹 등 수사 당시 대검찰청 차장 검사를 지낸 인물이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BBK, 도곡동 땅 의혹 사건에 대한 무혐의 결론을 지휘했다. 정 전 수석은 또 도곡동 땅이 이 전 대통령의 제3자의 차명재산이라는 의혹이 일자 “도곡동 땅이 이명박의 차명재산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라고 언론에 확인해 준 인물이다. 검찰 공식 입장 발표가 있기도 전에 말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현재 BBK와 도곡동 땅 문제로 재판대 앞에 선다.

대한변협도 이 같은 이유로 정 전 수석의 사건수임이 부적절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변호사법 31조 1항 3호는 변호사가 공무원·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거나 취급하게 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정 전 수석이 당시 수사를 지휘했을 개연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직무상 취급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같은 법 57조와 변호사 윤리장전 48조도 같은 취지의 내용을 법무법인에도 준용한다고 규정해 법무법인 열림의 사건 수임도 제한되는 결론에 이른다.

이 유권해석은 정 전 수석이 정식으로 대한변협에 확인을 요청해 온 사안으로, 그도 자신의 수사경력이 변호사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 전 수석은 오롯이 이 전 대통령의 변호를 위해 설립된 법무법인 열림에 남아있다. 자신의 활동이 변호사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법무법인의 활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인식하면서도 말이다.

언론에서는 사건수임이 불발된 정 전 수석이 ‘외곽’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말이 ‘외곽’이지 ‘내부’에서 총 지휘할 가능성도 크다. 혹자는 개연성만으로 예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 전 수석의 업무범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정 전 수석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라고 잡아뗀다면 변호사법을 위반하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결국 공무원이 직무상 취급한 사건을 제한하도록 한 변호사법의 취지와 법률적 기능이 마비되고 마는 것이다.

선택은 정 전 수석의 몫이다. 정 전 수석이 국민적 의심을 계속 받으며 이 전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것인지, 법무법인 열림에서 탈퇴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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