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여우조연상은 의 앨리슨 제니에게 돌아갔다. 둘 다 매우 ‘미국적’이며,‘강한 엄마’를 연기했다.
<아이, 토냐>(2017)는 공식 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한 최초의 여자 피겨 스케이터이자, 1994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라이벌 낸시 캐리건을 린치한 사건으로 악명 높은 토냐 하딩의 일대기를 그렸다. 토냐 하딩은 지난 20여 년간 스포츠맨십의 타락을 뜻하는 대명사로 불리며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어왔다.
영화는 그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를 둘러싼 미국 대중문화, 사회 현실을 이야기한다. 속칭 ‘화이트 트래시(백인 쓰레기)’라 불리는 가난하고 교육 못 받은 백인 그룹에서 나고 자란 토냐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다.
어머니는 “내가 웨이트리스로 일해 번 돈을 너한테 다 들이붓고 있다”며 혹독한 훈련과 성공을 강요하지만 사랑은 주지 않고 아버지는 울며 매달리는 어린 토냐를 떼어놓고 떠나버린다.
피겨 관계자들은 토냐의 가정과 그의 캐릭터가 미국의 이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돈 없는 토냐가 직접 재봉질해서 만든 의상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점수를 깎아내린다. 부유한 백인 소녀들이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경주하던 당시의 피겨 대회에서 과격하고 잡초 같은 토냐의 캐릭터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극 중 ‘토냐(마고 로비 분)’의 어머니 ‘라보나 골든(앨리슨 제니 분)’은 또 하나의 미국을 대변한다. 할리우드 아역 출신 배우들 뒤에는 악명 높은 ‘스테이지 맘’이 존재하곤 했다. 자식을 자기 성공과 성취의 도구로 삼은 엄마들이다. 일명 ‘피겨맘’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용어다. 배우 앨리슨 제니는 바싹 깎은 머리에 차가운 뿔테 안경을 끼고 고압적인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우면서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모습만으로도 피폐하고 가학적인 부모상과 그들의 통제 아래 있는 아이들의 문제를 관객의 체험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아이, 토냐>가 블랙 코미디라면 <쓰리 빌보드>는 건조하지만 묵직한 범죄 드라마다. <쓰리 빌보드>의 어머니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 분)’는 딸이 강간 살해당한 후 그를 방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딸은 차를 태워달라고 했지만 밀드레드는 그 요청을 거부했다. 어머니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사건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 결국 밀드레드는 교외의 커다란 광고판 세 개를 사들여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광고를 낸다.
이 광고는 마을을 소란에 빠뜨린다. 암으로 죽어가는 경찰서장과 그를 좋아하는 부하들, 마을 사람들은 밀드레드에게 광고를 내리라고 종용한다. 심지어 자식뻘 되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버린 딸의 생부조차 밀드레드에게 비아냥댄다. 그럼에도 밀드레드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돌처럼 단단한 얼굴을 하고 걱정을 가장한 위협들에 독설로 응수하는 밀드레드는 저 비정한 라보나 골든과 한판 붙는다 해도 한 치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엄마들을 안다. 자식의 죽음 후 투사가 된 엄마들 말이다.
알다시피, 세상은 피해자의 유족들이 동정 외의 것들, 예컨대 정의, 응징, 각성, 구조의 변화 등을 요구하면 즉각 가해자로 돌변해 매질을 한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 떼쓰지 말라고, 지겹다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분노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외면하고 회유하고 억압한다. <쓰리 빌보드>에서 밀드레드가 처한 상황이 꼭 그렇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밀드레드의 분노가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한다.
때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다. 왜 동정심을 유발해 제 편을 늘리는 대신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싸우려고만 할까. 하지만 이내, 그런 반응이야말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2차 가해고, 세월호 유족들에게 “자식은 가슴에 묻으라”고 망발한 국회의원 같은 부류와 내가 별로 다르지 않은 증거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세상에는 이런 엄마도 있고 저런 엄마도 있다.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누군가의 삶은 드라마에, 누군가의 삶은 느와르에, 누군가의 삶은 현실 풍자 코미디에 가깝다. 그것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한결 풍요로워질 수 있다. 어머니들에게 관심을, 올해 아카데미의 또 다른 교훈이 이것이다.
글쓴이 이숙명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프리미어>, 여성지 <엘르> <싱글즈>에서 기자로 일했다. 펴낸 책으로 <패션으로 영화읽기> <혼자서 완전하게> <어쨌거나 뉴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