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로부터 촉발된 조씨 일가 갑질 역사…원리와 원칙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원근법' 필요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유럽에서 일어났던 문예 부흥운동 르네상스가 지금까지도 인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르네상스를 통해 일종의 불균형적 권력관계를 수평적으로 조율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는 곧잘 휴머니즘(인문주의)으로 해석되는데, 르네상스는 이전까지 예수와 하나님 등 에게 집중됐던 세계관의 초점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놓는 계기가 됐다.

 

르네상스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데에는 초기 원근법의 발명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 화가들은 사물과 사람을 실제 크기가 아닌 관념과 권력의 크기에 맞춰 그렸다. 성화(聖畵)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물리 법칙을 벗어나는 외형을 통해 그들의 위치와 힘을 드러냈다.

 

그러나 원근법이 도입되며 예수와 하나님은 현실세계의 비율을 몸에 걸치고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투시원근법이 도입된 작품으로 알려진 마사초(1401~1428)() 삼위일체는 예수와 하나님, 그리고 성령을 통해 기독교 정신을 기리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이 역사 중심에 서는 분기점 역할을 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완벽한 현실의 법칙 속에 갇힌 채 묘사됐다.

 

원리 원칙과 인본주의에 눈을 뜬 사람들은 곧이어 왜곡된 종교 권력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고, 결국 종교개혁을 통해 성직자들의 종교갑질을 끊어낼 수 있었다. 원근법은 멀리 있는 것은 멀리, 가까이 있는 것은 가까이에 두는 기본 원칙만으로도 공사(公私)를 구별하고, 이성을 바로 세우고, 권력을 재분배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원근법이 발명된 지 500년도 넘었지만 우리나라 사회엔 아직도 원근법을 무시하는 미친 예술가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먼 것과 가까운 것을 구분 못하고 제 멋대로 권력을 그려낸다. 멀리 있어야 할 건 가까이에,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은 멀리 위치시키며 공사를 마구 뒤섞는다. 미친 예술가들이 자비 없이 휘두르는 붓질에, 일반 사람들은 캔버스 한 켠에서 숨죽여 울고 있다.

 

최근 갑질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미친 예술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등에 업고 막말 고성은 물론이거니와, 음료수 유리병을 던지고 물을 뿌리는 갑질을 했다고 한다.

 

조 전무의 예술적 재능은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다. 조 전무의 언니 조현아 칼호텔 사장은 지난 2014년 땅콩을 봉지째 줬다는 이유로 기내 사무장을 무릎 꿇렸다. 그리고는 서비스 지침서 모서리로 그의 손등을 수차례 찍어댔다.

 

갑질 논란은 조양호 한진그룹회장과 그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에게로 확산하고 있다. 관세청은 한진그룹일가가 개인 물품을 조직적으로 위장해 상습 탈세했다는 혐의로 대한항공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찰 역시 이 이사장의 폭행과 폭언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자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진그룹 내에서 조씨 일가는 마치 과 같다고 한다. 르네상스 이전의 성화에서처럼 거대한 모습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중세시대 예술가들이 신앙을 숭배하며 성 삼위일체를 그렸다면, 조씨 일가는 한진그룹 내에서 권력을 숭상하는 () 삼위일체를 그려냈다. 성자성부성령이 하나이듯, 갑자갑부갑령도 하나였다.

 

마사초의 그림에서 하나 인상적인 점은 바로 제단 아래쪽 돌로 된 관 부분이다. 관 위에는 해골이 하나 누워있고, 그 위로 나 역시 한때 지금의 당신 같았고, 당신 역시 언젠가는 지금의 나와 같을 것이라는 다소 소름 돋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인간은 다 비슷한 삶을 살다 죽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조씨 일가와 같은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할 수 있을런지는 과연 의문이다.

  

《성 삼위일체》(1425~1428) - 산타 마리아 성당, 피렌체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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