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사망 사고’ 이마트, 노조에 ‘조용한 추모’ 요구…조용하면 조용히 묻힐 것

“올 가을은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MBC 라디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은 2004년에 끝났다. 2003년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주익씨는 대량 해고에 반대하다 85호 크레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이 사건을 두고 라디오 오프닝에서 위에 적은 것처럼 말했다.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은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를 버티신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당시를 무척 잘 아는 것처럼 썼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음성을 실시간으로 들어본 적이 없다. 2003년의 나는 영화음악도 모르고 음악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고 사회과부도만 알고 그냥 체르니를 쳤다. 최근 어떤 계기로 ‘정영음’에 대해 알게됐고,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를 고작 ‘검색’하다가 그에게 깊은 관심이 갔다. 그의 지나간 방송들이 참 듣고 싶었다. ​그는 2004년 불의의 고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일을 하다가 힘들 때마다 “차라리 죽고싶다”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이는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편하게 살고 싶다”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이마트 계산대에서 근무하던 고(故) 권미순 사원은​ 지난달 31일 갑작스런 심정지로 사망했다. 세상에 알려진 사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이다. 앞선 지난달 28일에는 경기도 남양주 이마트 다산점에서 노동자 이아무개씨가 무빙워크 수리 중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마트노조는 잇딴 사망사건에 대해 이마트가 직원 안전에 무감하다며 시위를 벌였다. 노조는 심정지가 온 권씨에 대한 사측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달 초 명동 신세계 본점 앞에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정용진 부회장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이마트는 노조측 관련자들을 고소·고발했다. 시위가 폭력적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이마트에 따르면 노조는 추모집회 후 기물을 파손하고 직원을 폭행했다. 이마트는 사고 발생 직후 즉시 119에 신고하는 등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보도자료 말미에 “​불법 행위를 멈추고 조용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추모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추모 당시 벌어졌다던 폭행의 시비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폭행이 있었다’는, ‘폭행은 없었다’는 말과 말이 있을 뿐이다. 다만 조용히 해 달라는 저 주문만은 확실히 암담하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목소리를 소거하라는 주장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노사 관계에서 이는 더욱 특수하다. 사망에 대한 정확한 진상 규명과 사고에 대한 사과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클 수밖에 없다. 목소리는 힘이기 때문에. 2014년부터 2016년, 지난해까지 우리가 이뤄낸 일련의 변화들은 목소리와 목소리가 만나 형성된 더 큰 목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용했더라면, 조용히 묻혔을 걸.

우리 사회가 무언가를 꼭 바꿔야한다는 조용한 주장을 무겁게 받아들였던 적이 있었을까. 최대한을 해야 최소한의 반응이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게 우리의 일상 아니었나. 조용해야만 하는 시위는 그 주변에 소리조차 머물지 못해 더욱 외로울 것이다. 그런 외로움이 권고되는 올 봄에 나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