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도덕성·정당성 무너져…‘적폐청산’ 주장 타당성 갖게 돼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입장해 착석해 있다. / 사진=뉴스1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4년형을 확정했다. 이명박 정권 당시 국가정보원이 댓글 공작을 통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사실이 법률적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도덕성과 정당성이 무너지게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9일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2월부터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과 관련한 여론전을 지시한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정치관여금지 위반),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각종 선거과정에 국정원 심리전단국 직원들을 동원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댓글을 달도록 지시해 선거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상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를 받았다.

이 사건 핵심 쟁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1심부터 줄 곳 유죄가 선고됐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심급별로 각기 다른 판단이 내려졌다.

1심은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보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정당성을 흔들 수 있는 핵심 혐의였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국정원이 여당지지 및 야당을 비방하기는 했지만 특정 후보를 당선·낙선시키려는 목적성 및 계획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이 사용한 ‘425 지논’ ‘씨큐리티’ 이름의 파일을 공직선거법 위반의 핵심 증거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판단을 유보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7월 대법 전합은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유·무죄 판단 없이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다.

당시 전합은 2심 판결의 근거가 ▲인터넷 게시판 활동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찬·반 투표’ 클릭 행위 ▲트위터 활동 등 3개의 행위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중 트위터 활동에 대한 사실관계 증명에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합은 “국정원 직원 컴퓨터에서 발견된 시큐리티 파일 등이 국정원 심리전단의 업무 목적으로만 작성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의 사실관계는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인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이 부인되면서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후 이어진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상당 부분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이 자체 조사를 통해 검찰에 넘긴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본구본 등 각종 문건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재차 유죄를 선고한다.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원 전 원장은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고 재차 법정구속 됐다.

재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2월 19일 이 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부 개입 등의 논란이 일자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했고, 이날 최종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국정원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에서 인터넷 게시글, 댓글, 찬반클릭, 트위터 등을 수단으로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야당 등 반대 세력을 비방했다”면서 “당면한 선거에서 집권여당 및 그 소속의 대통령후보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불법적인 정치관여 활동 및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로 인정한 사건”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확정 판결에 대해 대한법학교수회 백원기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확인 된 만큼, 두 정권의 도덕성과 정당성이 완전히 무너지게 됐다”면서 “국정농단 수사와 이명박 수사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보복수사라는 의미는 희석되고, 적폐청산이라고 주장한 현 정부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게 됐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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