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피해자들 “분쟁 조정에 허송세월 보내” …전문가들 “중재원 독립성‧감정부 규정 키워야’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2년 전 사지연장술 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 폐색전증으로 사망한 김지하(가명, 사망 당시 23) . ‘의료과실이 아니다라는 법원 판결에도 김씨의 아버지 A씨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의료분쟁 과정에서 하소연을 들어줄 곳이 없다는 점에서 A씨의 고통은 더 심했다고 한다. A씨는 의료분쟁중재원은 의료사고를 판정할 때 병원 측의 의견을 더 우선시했다. 누락된 자료가 있음에도 병원이 제출한 의무기록지를 가장 1순위로 본다고 말했다.

 

해마다 의료분쟁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분쟁중재원)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재원이 의료사고를 조정하기보다는 병원과의 합의에 초점을 맞추거나, 의료계를 두둔하는 편향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호소다. 

 

의료분쟁중재원은 지난 2012년 생긴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의료분쟁 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5명으로 구성된 감정부가 꾸려진다. 감정부는 의료인 2, 법조인 2, 소비자권익위원 1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의료사고의 인과관계와 과실을 조사하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해 중재 판정을 한다.

 

그러나 상당수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들은 중재원은 대부분 병원과 합의를 종용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료분쟁중재원이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을 받으라는 식으로 강요한다는 것이다. 의료분쟁위원회가 의료계, 즉 의료기관에게 편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도 뒤따라 나온다. 

 

과거 S대학병원에서 신생아가 숨진 사건으로 의료분쟁을 신청했다는 유족 B씨는 기자와 만나 당시 의료분쟁중재원 직원이 내게 당신이 대형병원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나. 좋게 합의하라고 반강제로 권했다“(중재원이) 오히려 병원 측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듯한 말을 했다고 토로했다.

 

이로 인해 유족들은 의료분쟁 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민사 소송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민사 소송에 갈 경우 유족은 긴 시간과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이 과정을 버티지 못해 소송을 포기하는 유족들도 많다. 소송을 끝까지 이어간다하더라도 의료과실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의료분쟁중재원 고문 출신 의료전문 변호사는 보통 의료분쟁이 소송으로 갈 경우 유족들이 승소하는 경우는 40% 미만이다. 절반도 안된다. 특히 1심에서 승소하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 대법원 항고까지 간다​”며  “의료과실 특성상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실해야 하는데, 중재원이 병원 과실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유족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소개한 사지연장술 사망 사건만 보더라도 유족들은 2년 간 소송을 이어왔지만 의료과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병원 측은 사망한 김 씨가 새벽 530분에 걸어다녔다는 의무기록을 작성했지만, 유족 측이 제출한 CCTV에는 김 씨가 같은 시각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또한 김 씨가 쓰러진 직후 오전 1015분부터 30분가량 CCTV 영상이 누락됐음에도 의료분쟁조정원은 의무기록이 가장 중요하다고 일축했다. 현재 유족 측은 대법원에 탄원서를 낸 상태다.

 

전문가들은 의료분쟁중재원이 의료계에게 편향적인 이유는 자동개시 한정 탓이라 보고 있다. 현행법 상 중재원은 병원이 분쟁 조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경우 조정을 자동 개시할 수 없다. 중재원의 자동개시 권한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른바 신해철법이라고 불리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20161130일부터 시행됐지만 여전히 상황은 똑같다. 이 개정안은 환자가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혹은 장애등급에 해당하는 경우, 의료기관의 동의와 상관없이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법이다. 그러나 아직도 병원의 조정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중재원이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받아 분석한 연도별 의료분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분쟁 상담 수는 54929건이다. 201226831, 201336099건에 비해 5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2월까지 의료분쟁 상담 건 수는 벌써 11283건이다.

 

2012년부터 20182월까지 누적 의료분쟁 상담 건 수는 26766건이다. 그 중 일반상담은 217884, 전문상담은 42882건이다. 그러나 실제로 의료분쟁 조정·중재 개시율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분쟁을 판단하는 감정부 구성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료사고를 판단하는 감정부가 의료계 인사로만 구성이 된다거나, 해당 전공이 아닌 의사들이 감정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재원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국회에서는 의료사고와 분쟁에 관련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성일종 의원은 지난 4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분쟁중재원은 감정부 구성원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 또한 정부의 의료분쟁 조정 참여, 피해보상제도 개선 등이 포함돼 있다.

 

성 의원은 사실 중재원이라는 기관이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기관이다. (중재원은)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증거 자료 확보가 어려운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기관이라며 “하지만 취지가 무색하게 의료기관에 편향되게 운영되며 오히려 억울한 국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2년간 국정감사를 통해 피해환자들의 증언을 확보해 지적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 의원은 중재원의 자동개시가 한정돼 있는 탓에 병원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병원을 신경써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중재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대한다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의료분쟁으로 인한 소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의료기관도 소모적인 분쟁이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재원은 유족들이 갖고 있는 불만과 지적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를 반영해 업무 개선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의료분쟁중재원 관계자는 “중재원은 중재기구이기 때문에 양 당사자의 의견을 받아 중립적으로 판단한다. 당사자의 주장이 다를 경우 중재원을 모두 받아 (조정을) 진행해야 한다. 의료과오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 환자 측에서 질책을 받고, 의료과오가 있다고 하면 의료기관의 질책을 받는 부분이 있다”며 “의료는 전문적이고 민감한 분야다. 이런 지적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재원은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개선해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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