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미스터피자 등 유사 사례 속속…확실한 물증 없으면 혐의입증 어려움도

/그래픽=조현경 다지이너

유통업계가 회삿돈을 횡령하는 오너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유통업의 경우 타업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제조부터 유통, 판매 단계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오너들의 횡령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유통업 분야는 통상 제조부터 실제 상품 판매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중간과정에서 오너들이 회삿돈을 빼돌리기 경우가 종종 있다. 

‘A(제조)-B(유통)-C(판매)’단계를 ‘A(제조)-B(유통)-B2(페이퍼컴퍼니)-C(판매)’ 등으로 중간 거래 단계를 하나 더 집어넣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B2’ 회사는 한 개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횡령하는 범인 입장에선 거래 단계를 늘리면 일단 추적도 어렵고 유통마진은 더욱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너 횡령으로 리스크를 떠안는 유통업체의 사례는 최근에도 빈번하다. 서울북부지검은 삼양식품 전인장 회장과 아내 김정수 사장을 15일 불구속 기소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들 부부는 삼양식품의 A계열사에서 납품받은 포장상자와 식재료 중 일부를 자신들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서 납품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납품대금을 송금하게 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김 사장의 경우 이 회사에 직원으로 근무한 것처럼 속여 매월 4000만원의 급여도 타간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이런 방식으로 이들 부부가 횡령한 돈은 총 50억원에 달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가맹점주를 상대로 수년간 ‘갑질’을 한 혐의를 받는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은 치즈 유통단계에 동생이 운영하는 두 개 업체를 끼워 넣어 소위 ‘치즈 통행세’를 챙기도록 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정 전 회장의 횡령 의혹은 지난 1월 무죄로 판결 받았다. 중간 단계인 동생 회사를 부당지원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당시 참여연대는 정 전 회장의 치즈통행세 무죄 판결에 대해 통행세를 합법한 한 것이라며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런 방식의 오너 횡령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임대 아파트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10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친인척 명의로 된 페이퍼컴퍼니를 계열사 간 거래 과정에 끼워넣고 통행세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유통업계에 오너 일가의 횡령 의혹이 빈번히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혹은 충분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로 선고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특히 ‘B2’가 페이퍼컴퍼니가 아닌 실제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는 회사면 횡령의 사실을 입증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또 만약 중간단계인 페이퍼컴퍼니가 해외에 있을 경우에도 적발은 더욱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거래의 경우 세금계산서가 상호검증작용을 하기 때문에 계열사를 거치는 동안 돈의 흐름을 비교적 파악이 쉽지만 해외 거래가 중간에 끼면 자금흐름 파악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장기업 감사 경험이 많은 한 회계사는 “외국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마저도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하면 바로 추적이 어렵다. 감사보고서에는 있는 등재된 회사라도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회사는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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