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이해관계서 배제돼, 부평공장 비정규직 대대적 인원감축 우려…“사회안전망 구축 절실”

9일 오후 3시 40분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정문. 오전조 근무자 퇴근시간에 맞춰서 한국GM부평비정규직지회 노동조합원들이 선전 활동을 하고 있다. / 사진=윤시지 기자

“퇴직 후 위로금을 받아도 큰 위로는 안 되겠죠. 하지만 해고되면 그마저도 못 받아요.”

9일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농성 캠프 안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조합원 조아무개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2004년 2월 입사해 13년간 부평공장에서 엔진 생산관리 및 포장을 담당했다는 조씨는 지난해 7월 무급휴직을 통보받은 데 이어 지난해 12월 말에는 해고 통보문자를 받았다. 이후 조씨의 출근지는 조금 달라졌다. 회사 정문을 지나는 대신 정문 앞 농성 캠프로 발길을 돌렸다. 조씨는 지난 1월부터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부평공장 정문 앞의 천막에서 67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전 11시 40분께 조씨는 점심시간을 앞두고 사내 식당 앞에서 총고용 보장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선전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해고된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함께 사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가졌다. 현직 근무자와 함께하는 자리지만 익숙하게 식사를 마친 조씨는 “해고됐지만 출퇴근을 전처럼 하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요구안은 아무래도 조금 주목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노사 측이 ‘함께 살자’고는 하는데 ‘어떻게 함께 살지’에 대한 대답이 내놓아야 할 때”라고 토로했다.

한국GM의 노사 합의가 장기화 국면을 맞이하면서 정규직 직원은 물론,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외치는 고용안정 요구는 노사의 고래싸움에 ​묻혀 외면당하고 있다. 

 

9일 부평공장 정문 앞 부평비정규직지회 천막 안 . / 사진=윤시지 기자
한국GM 노동조합 부평비정규직지회는 군산에 이어 부평공장까지 인원감축의 칼바람이 닥쳤다고 전했다. 지난 1월 사측이 인소싱‧하청업체 폐업 정책을 펼치며 부평공장 내 비정규직 근로자 65명을 해고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는 주장이다.

서형태 한국GM부평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올해 해고된 비정규직의 고용승계를 위해 농성을 시작했지만 현재 1200명 가량의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실시할 인원감축을 막기 위해 농성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올해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인원감축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 업체를 대상으로 인원감축이 이뤄지기 더 쉽기 때문이다. 5월이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고된 이들 중 일부를 포함해 비정규직 37명은 지난 2월 인천지법에서 파견근로로 1심 판결이 났다. 노동계에선 파견근로 대상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사측에선 법원 판결에 대해 항소심을 진행한 상태다.

이와 관련, 한국GM 관계자는 “원청과 수급업체는 하·도급 계약을 맺고 업무를 진행하다가 주로 연말, 연초에 계약 갱신 여부를 결정한다. 수급업체와의 계약 해지에 불과하다. 지난해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계속 있어온 일”이라며 “최근 노사 합의 건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고된 사내하청 근로자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고용불안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직접고용 대상이 아닌 까닭에 노사 측 이해관계자에서 배제돼 결과 통보만 받는다며 한숨지었다.


9일 한국GM 부평비정규직지회가 67일째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 윤시지 기자

이날 농성 캠프에서 만난 부평공장 비정규직 노조원은 “해고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 근로자들 대부분이 10년 이상 부평공장에서 근무했다. 해고 통보를 받고 억울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며 “회사 밖으로 내몰린 심정이다. 조합원 중 대다수가 가장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희망퇴직은커녕 위로금이나 생활지원금 없이 실업급여에만 의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노사 합의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요구안은 군산공장 폐쇄 철회나 신차 배정 등 중요 안건에 순위가 밀려난 상황이다. 비정규직지회는 한국GM이 정상화된다면 그 후 비정규직 대상 인원감축이 대대적으로 실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형태 사무장은 “중요한 합의사안에 비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 요구는 다소 주목받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부평공장 사내 비정규직은 1200~1300명, 비정규직 노조원은 45명 정도뿐이다.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게 들릴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사내하청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가릴 것 없이 총 고용을 향한 큰 그림을 그려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한국GM 사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한국GM에 대한 실사를 진행 중이며 실사 결과를 토대로 GM 본사와 한국GM의 회생 방안에 대한 협상에 돌입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비정규직 해고자를 대상으로 재취업이나 실업급여 등 보호 제도를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없어 생계 유지 수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법률원 한 변호사는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인소싱 등으로 인원감축하는 사례는 흔하게 발생해왔다. 사태가 장기화 돼 복직이 어려워질 경우 일부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재취업을 원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를 위해 재취업 제도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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