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보고 싶은데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 방대한 콘텐츠의 바다에서 내 취향에 맞는 영화나 드라마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넷플릭스 알고리즘은 쉽게 해낸다.

 

사진=아레나

넷플릭스와 나

넷플릭스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시간의 승리자’가 되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릴 없이 보내는 시간, 혹은 할 일 없이 보내는 시간 등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남는 시간 동안 ‘뭘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뭘 볼까?’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넷플릭스 유저들에게 설문을 시작하게 된다. “요즘 뭐 봐?” 누군가는 <블랙미러>를 추천하고, 누군가는 <마인드 헌터>를 추천했다. 

 

시즌 1 플레이를 눌러놓고 동하지 않아 10분 만에 꺼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작 내 관심을 끈 것은 넷플릭스 홈 화면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상위 리스트에 등장한 <루머의 루머의 루머>였다. 모든 추천이 다 실패로 돌아간 어느 날, 참담한 심정으로 예고편을 꾹 눌러봤다. 그런데 바로 내 취향을 저격했다. 미국 고등학교, 축구부, 치어리더, 아웃사이더, 프롬 파티 등.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가 잔뜩 담겼다. 빨리 다음 편을 보고 싶어서 숨도 안 쉬고 보며 13화를 순식간에 격파했다. 그 이후 나의 넷플릭스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취향의 발견

내가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열정적으로 시청했다는 사실을 넷플릭스가 인지한 이후, ‘취향 저격 베스트 콘텐츠’ 리스트가 확연히 달라졌다. 넷플릭스는 우선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 태그된 키워드를 접수했다. 이를테면 ‘미국 틴에이저’ ‘스릴러’ ‘사건’ ‘진실’ 등의 시청 취향을 반영해 미국 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살인 사건을 좇는 <리버데일> 시리즈를 나에게 추천해줬다. 그다음으로는 내게 <아메리칸 반달리즘>을 적극 추천했다.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교직원 주차장에 세워둔 27대의 자동차에 스프레이로 성기 그림을 그린​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는 모큐멘터리 작품이었다.

 

그 알고리즘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넷플릭스는 보유한 콘텐츠의 양보다 ‘취향’으로 승부한다. 가입자를 계속 잡아둘 수 있는 놀라운 힘이 바로 ‘추천 알고리즘’에 있다. 마침, 지난 1월 엄청 추운 날에 ‘넷플릭스 정주행의 집’ 행사를 위해 넷플릭스 내부자들이 방한한다고 해서 직접 만나러 갔다. 최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조너선 프리드랜드, 아태지역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 제시카 리를 비롯한 넷플릭스 수장들이 전부 모였다.

 

파트너 관계 디렉터 나이젤 뱁티스트, 콘텐츠 수급 담당 부사장 로버트 로이, 그리고 사이언스 및 애널리틱스 담당 부사장 케이틀린 스몰우드가 각각 30분씩 강연 세션을 마련했다. 그중에서도 넷플릭스의 맞춤형 서비스에 대한 강연을 한 케이틀린은 “넷플릭스는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녀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더 많은 콘텐츠를 시청할수록 더 정확한 추천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엄지 버튼을 눌러 ‘좋아요’ 혹은 ‘싫어요’를 표시해주면 나의 호불호를 즉각적으로 반영한다. 지금까지 본 콘텐츠의 평점을 충실히 매기다 보면 넷플릭스 알고리즘을 더 세심하게 조절할 수 있다. 영리한 넷플릭스는 드라마를 되도록 한 시즌 통째로 올려놓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못 참고 정주행을 하는 작품에 태깅된 다양한 키워드가 곧장 사용자의 취향으로 집계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효자 종목들 스트리밍 서비스의 후발 주자였던 이들에게 사용자들이 높은 충성심을 보이는 이유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공이 크다. 나르코스 align=

개인의 취향

넷플릭스 가입 후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봤는지에 따라 다양한 버전의 홈 스크린이 존재한다. 우리의 케이틀린은 미스터리 장르, 범죄 드라마, 그리고 캐릭터의 성장을 다룬 작품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의 홈 스크린에는 ‘주도적이고​ 강한 여성이 등장하는 TV 쇼’가 추천되어 있다. 꽤나 구체적인 취향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기존에 어떤 장르를 보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넷플릭스는 케이틀린을 40대, 미국인, 여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케이틀린이라는 개인으로 인식하고 그녀의 취향에만 집중한다. 기존에 시청 콘텐츠를 선택하면서 클릭하게 되는 다양한 태그가 취향을 파악하는 단서가 될 뿐, 성별과 사는 지역, 인종 등은 전혀 상관없는 영역이 된다.

 

아이슬란드에 사는 80세 할아버지와 브라질에 사는 13세 소녀의 넷플릭스 취향이 같을 수도 있다는 ‘열린 알고리즘’이다. 이를 바탕으로 최대 24시간마다 새롭게 추천작 리스트를 생성하고, 시청 패턴에 기반해 콘텐츠 취향이 비슷한 회원 그룹을 만들어낸다. 국적보다 과거에 내가 본 콘텐츠가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홈 스크린에 보기 쉽게 구분해놓은 장르, 즉, ‘한국 영화’ ‘미국 제외 외국 영화’ ‘액션 영화’ ‘로맨스 영화’ ‘스릴러’ 등은 취향 알고리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단 몇 분만 보고 꺼버렸다면 그 콘텐츠는 취향에 집계되지 않는다. 한 작품을 끝까지 다 봤는지, 시리즈라면 얼마 만에 다 봤는지, 두 번 본 작품은 있는지, ‘좋아요’와 ‘싫어요’를 눌렀는지, 스크롤링을 얼마나 하는지까지 복잡다단한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만약 스크롤을 많이 내렸다면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는 의미이므로, 좀 더 새로운 콘텐츠를 추천 리스트에 올려놓는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후발 주자였다. 사용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전략이었다.

 

2000년도에 내놓은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 보고 싶은 영상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은 보다 단순했다. 사용자에게 영상마다 별점을 매기게 한 뒤 그가 선호하는 영상들 사이의 패턴을 분석해 다음에 볼 영상을 추천했던 것. 넷플릭스는 이제 ‘취향’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또 다른 세상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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