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저당 잡힌 현재 발판 삼아 성장한 한국경제…저성장 시대, ‘생존’보다 ‘생활’ 찾아야

어느 기업체 임원과 밥을 먹었다. 그는 젊을 때는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며 나의 살아갈 날을 격려했다. “박봉인데, 앞으로 돈을 들여야 할 곳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내가 말하니 십 수 년 전 연봉이 지금의 20%였다면서 매해 오르다보니 지금의 억대에 이르게 됐다. 금방이다라고 그럴듯한 처방전도 전했다. 재차 이런 응답을 건넬까 하다 선의에 딴지 거는 것 같아 그냥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전무님, 지금은 그때와 같은 고성장 시대가 아니랍니다. GDP도 연봉도 그렇게 오를 날은 이제 한국에 돌아오지 않아요

 

2년 전쯤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고 기자, 꿈이 있어야 해. 꿈을 이루고 나서 되돌아보면 지금의 고생은 다 추억이야라며 멘토를 자처했다. 비슷한 시기에 만난 군 고위간부 출신 인사는 업무 때문에 서구 군인들을 만나보면 삶이 너무 단조롭더라. 하루하루만 생각할 뿐, 큰 꿈이 없으니 그런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들에게 나는 이런 답을 전해야 했다.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오늘 하루가 더 중요한 가치가 있지 않나요?”

 

2007. 서울시장 임기종료를 코앞에 둔 MB가 내가 다니던 대학을 찾았다. 이미 그가 유력 대권주자로 자리매김 한 때였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의 내용은 일관됐다. 그는 고난뿐이던 젊은 날을 영광의 상처로 소개했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달려오니 여기에 이르게 됐다면서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손을 들고 MB에게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인생에서 영광은 짧고, 상처는 길지 않나요?”

 

김애란의 단편 입동에서 화자는 이런 상념에 빠진다.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었다.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벽 아래였나 하는. 우리가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늘 미래라는 강박관념을 품은 채 살아왔다. 마음은 언제나 형상 없는 미래에 서둘러 도착했다. 부모세대가 그랬고, 조부모 세대는 더 그랬다. 목적지를 향하는 길에서 마주하는 작은 고통은 혼자 삭혀야 했다. 삭히지 못하면 ‘어린애’나 ‘의지가 박약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게 사회적 정언명령이었고 한국의 성장엔진이었다.

미래에 저당 잡힌 현재를 발판 삼아 경제는 매해 고공비행을 거듭했다. 달구지가 달리던 벌판은 빌딩숲이 돼 수천만 원짜리 외제차가 줄지어 다니는 길로 변했다. 누군가는 높았던 꿈을 실제 이룰 수 있는 시대였다. MB의 삶이 딱 그랬다. 어느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한국경제 최대 숙제는 저공비행 유지가 됐다. 아득해진 꿈의 높이는 현실과 불화할 공산이 커졌다. 시대가, 경제가 그렇게 됐고 하필 MB의 영광도 이 시점에 끝났다. 훗날 역사가들은 MB의 구속을 생존주의 시대의 종언으로 평할 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찾기)이 인기다. 덕분에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주거지가 각광받고 ‘패밀리데이’도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가 빠진 것 같다. 워라밸의 수면 아래 아직 잠복한 ‘생존주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은 “출퇴근 문화가 바뀌면 뭐하나. 인사고과와 승진 기준이 그대로인데”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규칙은 생활을 중시하되, 구조는 생존을 자극하는 셈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모두에게 물어본다. 차가운 현실보다는 조금 위에, 머나먼 꿈보다는 조금 아래 자리한 삶을 지향하면 안 되는 걸까.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그 시간에 영화와 책, 연극에 몰입해 지내면 꿈을 포기하는 걸까. ‘꼭 무엇이 되기 위해’와는 상관없는 자기계발은 불가능한 걸까. ‘신화는 없다’고 설파하던 한 전직대통령의 감옥행을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PS.
신상을 밝힐 수 없는 한 지인은 자신의 업계에서 주목받는 신예다. 헌데 그는 자신을 대외에 알린 그 직업이 ‘부업’이라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본업’은 예술이다. 그는 본업을 위해 부업으로 돈을 버는 셈인데, 그런데도 부업에서의 능률이 돋보인다. 생존보다 생활에 초점을 맞춰도 충분히 ‘조직에 도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