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기관 결정에 행정소송은 부적절…정치적 퍼포먼스 ‘의심’

지난해 3월 10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사거리에서 열린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주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자 경찰 차벽을 넘어 헌법재판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무효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잇따라 ​각하 판결을 선고받았다.

탄핵결정은 사법기관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의 처분 등​에 항고 성격을 가진 행정소송을 무리하게 제기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 부장판사)는 30일 이모씨가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등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한 8명의 전·현직 헌법재판관을 상대로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파면 결정 취소’ 소송을 각하했다.

같은 법원 행정5부(재판장 박양준 부장판사)는 전날에도 박모씨 등 10명이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낸 파면 결정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무변론으로 각하 판결했다.

각하란 소송이나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제기된 경우 주장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두 사건 재판부의 공통된 판단은 사법기관인 헌재의 결정을 행정청의 처분으로 볼 수 없어서 행정소송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결정은 사법기관인 헌재가 헌법, 헌법재판소법에 규정된 업무로서 한 결정”이라며 “행정청이 공권력의 행사로서 행하는 처분이 아니어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헌재의 탄핵 결정에 대한 불복절차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는 입법자의 결단에 의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 부당하다거나 그것이 항고소송을 허용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각하 판결이 뻔한 사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지지자 결집 등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전날 판결 직후 행정법원 정문에서 사법부 판결을 비판하는 취지의 소규모 집회를 열었다.

대한법학교수회 백원기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헌재의 결정은 최종적인 기속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결정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하다”라면서 “이들이 정치적인 이슈화를 노리고 전략적으로 사법제도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 회장은 이어 “이들이 법조인의 자문을 얻은 뒤 소송을 제기했는지도 의문이고,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봤을 때도 부적합한 소송제기였다”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탄핵 결정이 뭔가 문제가 있는 심정적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향법의 이재화 변호사는 “소송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데도 정치적 퍼포먼스 일환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가가 소송비용을 철저하게 집행하는 방법으로 소송이 남발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정치로서 해결돼야 할 일들이 사법부로 넘어오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 심화하고 있다”면서도 “소송제기는 개인의 자유이고, 법관이 소송의 정치적 배경을 예단해 판결에 영향을 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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