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에 희생된 베트남 민간인 9000여명 추산…청원 게시판 "숨기고 변명하면 일본과 다를 점 없다"

사진은 지난 2015년 4월 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1173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가 집회 현장을 찾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안(오른쪽 두번째)씨와 이동하는 모습. / 사진=뉴스1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 정치권에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부터 5박7일 일정으로 베트남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를 방문한다. 문 대통령은 23일 베트남 국부인 호찌민 주석의 묘소에 헌화한다. 이날 쩐 다이 꽝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베트남 방문 마지막 날인 24일에는 하노이 시민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 기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할지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수는 9000여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한국군은 마을 전체에 무차별 사격하기도 했다. 빈호아 학살의 경우 1966년 12월 3일부터 6일 동안 한국 청룡부대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 430여 명이 죽었다. 빈호아 마을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민간이나 정치권 차원에서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학살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12월 트란 둑 루옹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불행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2001년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베트남 방문 시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며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베트남 호찌민시 응우엔후에 거리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식 영상축사에서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며 간접 사과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 정치권에서는 이번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한베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주교는 지난 19일 “고통스럽지만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민간인학살의 참상을 마주해야 한다”며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이 한베 간 역사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의 분수령이 되길 바란다. 그 첫발로 대통령의 공식적이며 공개적인 사과를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한국의 시민들 중에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사과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그러나 베트남 언론은 한국 대통령들의 사과를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고 베트남 국민들 또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가 한국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 점을 역지사지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베트남의 ‘하미 양민학살 50주기 위령제’에 찾아가 희생자 가족들, 생존자들 만났을 때 그분들은 정말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자기들한테 손을 내밀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더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이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도 현장을 증언하는 분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최소한 아베의 길을 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사과해야 한다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한 청원 글에는 “베트남전 당시 한군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조사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면 보상해야 되지 않을까”라며 “숨기고 은폐하고 변명하면 일본과 다를 점이 없다”고 적혀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경제사절단에 손경식 CJ그룹 회장 겸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송용덕 롯데그룹 부회장 등이 포함됐다. 이 외에 4대그룹은 전문경영인으로 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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