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탄핵심판서 ‘방패’ 자처해…영장실질심사 앞둔 MB는 로펌들이 수임 꺼려

'뇌물수수·횡령·조세포탈'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치고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사진=뉴스1


전직 대통령이 구속 기로에 선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됐다. 오는 22일 예고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 의사를 밝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의 변론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처럼 대통령이 형사재판이나 탄핵심판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조력자로서 활동한 법조인들이 있었다. 대통령을 보좌한 변호사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 전두환·노태우 지킨 청와대 참모들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95년 11월 16일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이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받은 것으로 확인된 2358억원(확정된 뇌물액은 2628억) 전액을 뇌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불과 수 시간 만에 발부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같은 해 12월 3일 구속됐다. 12.12 및 5.18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는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경남 합천으로 도주한 전 전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했다.

두 전 대통령을 지킨 변호사들은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민정수석을 지낸 한영석 변호사가,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양우 변호사가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은 변호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었으나, 국선변호인 선임을 꺼렸던 가족과 측근들이 그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전 변호사를 도운 변호사 중에는 사정수석을 지낸 김유후 변호사도 있었다. 김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에 동행하며 검찰 기소까지 법률자문을 맡았고, 한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기소된 뒤에도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하며 변론을 맡았다.

5공 정권에서 민정당 국회의원과 법제처장 등을 지낸 이양우 변호사는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1988년 백담사 유배 당시에도 법률고문을 자처했다. 이 변호사 외에도 대법원 판사(현 대법관)를 지낸 전상석 변호사, 대검 특수3과장 출신의 석진광 변호사가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두 대통령과 함께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공동선임 돼 재판의 변론을 주도했다.

이들은 변론 외에도 정치적 언행을 통해 여론을 뒤집으려 애썼다. 1심 공판과정에서 재판 진행 방식에 반발해 변호인단 총사임 카드를 꺼낸 일화는 유명하다. 1996년 7월 8일 두 전직 대통령의 변호인 8명은 “재판부가 유죄를 예단하고 있다”며 전원 사임했다. 두 전직 대통령도 재판 출석을 거부하며 보이콧 전략을 폈다. 하지만 재판부가 국선변호인을 선정하고 인치 방침을 내비치자 두 전 대통령은 다시 재판에 출석했고, 결국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22년 6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2심은 두 사람의 형량을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줄였고, 이 판결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참여정부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 사진=뉴스1

◆ 무게감 갖춘 노무현의 12인…민변 출신 돋보여

2004년 4월 탄핵심판을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총 12명으로 구성됐다. 노 전 대통령이 창립에 가담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출신 변호사도 다수 참여했다.

사회 원로급 인사로는 민변 고문이자 대한변호사협회 총회 의장을 지낸 유현석 변호사가 대리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 변호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박종철·강경대 사망사건 등 주요 시국공안사건의 변론을 맡는 등 인권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탄핵기각 결정 며칠 뒤 작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대리인단 간사로 참여했다. 1998년 민변이 창립될 때 노 전 대통령과 창립 회원으로 활동한 문 대통령은 향후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등을 지냈다.

대리인단의 대표에는 감사원장 출신이자 원로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무게감 있는 법조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헌법재판관 출신의 하경철, 후일 14대 대법원장이 된 이용훈, 대법관이 된 박시환, 헌법재판관이 된 조대현, 이종왕, 양삼승, 강보현, 윤용섭, 김덕현 변호사 등도 거물급 변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을 도왔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5월 14일 노 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박연차 게이트’ 등 의혹으로 검찰 소환조사까지 받았고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검찰에 맞서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법조인들은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인물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인단을 이끌었으며, 민정수석 출신의 전해철, 민정수석실 소속 법무비서관을 역임한 김진국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문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각각 민변 부산·경남 대표와 사무차장을 지낸 인물이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와 사위 곽상언 변호사도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 중량감 떨어진 박근혜 대리·변호인단…‘자충수’ 평가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도운 대리인단은 총 20명에 달했지만 앞선 세 대통령과 비교해 다소 무게감이 떨어졌다. 언론에서는 ‘실무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헌법전문가는 없었다.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법조인은 이중환, 서성건, 손범규, 채명성 변호사다. 하지만 이들 중 판검사 경력이 있는 사람은 이 변호사뿐이었다. 검사 출신인 이 변호사도 2000년부터 약 2년간 헌재에 파견을 나간 것이 헌법 관련 경력의 전부였다. 손 변호사와 이후 추가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는 친박 정치인 출신으로 헌법전문가가 아니었다.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 대리인 표기란에 ‘피청구인의 변호인’이라고 적시한 사례는 이들의 비전문성을 보여준 구체적인 사례다. 변호인은 형사재판에서만 쓰이며 그 외 헌법재판과 민사재판은 대리인으로 쓴다.

뒤늦게 합류한 원로 변호사들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평우, 서석구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막말과 비상식적인 변론은 향후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파면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내부 갈등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이어진 형사재판 과정에서 탄핵심판 대리인단 상당수를 해임했다.

형사재판에서도 문제점은 개선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를 물색했지만, 선임에 실패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대기업들이 대형 로펌의 전관 변호사 대부분을 수임한 상태인데다, 여론을 의식한 실력 있는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들이 의도적으로 수임을 피했다는 후문이다.

유영하 변호사를 중심으로 꾸려진 형사사건 변호인단 7명(유영하·채명성·이상철·김상률·도태우·남효정·이동찬 변호사)은 재판을 정치적으로 몰아가다 전원사임이라는 자충수를 둔다. 조현권 변호사를 비롯해 5명의 국선변호인이 선임됐지만, 박 전 대통령과 제대로 된 접견도 못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별도 기소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에서도 국선 변호인단 접견을 거부하며 보이콧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인 정동기 변호사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변호인단 사무실에서 나와 이 전 대통령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뉴스1


◆ 법무법인 ‘바른’ 중심의 이명박 변호인단…정동기는 불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변호인단은 법무법인 ‘바른’ 출신의 변호사들이 중심이 됐다. 바른은 이명박 정부에서 정부 주요 사건을 맡아 성장해 이명박 정부의 전담 로펌으로 불린다.

현재 정식 선임계를 내고 활동 중인 강훈, 박명환, 피영현, 김병철 변호사 등 4명이다. 이중 중 세 명이 바른 소속이었다. 강 변호사는 바른의 공동창업주고, 피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바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서울고법 판사 출신인 강 변호사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측근이다. 강 변호사는 최근 바른을 퇴사해 이 전 대통령 변호를 전담하기 위한 법무법인인 ‘열림’을 세웠다. 박 변호사 역시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국민소통비서관을 지낸 청와대 참모 출신이다.

강 변호사와 함께 바른을 나온 민정수석 출신의 정동기 변호사는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애초 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의 중심인물로 지목됐으나,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법 위반 유권해석으로 참여가 불발됐다.

대한변협은 2007년 정 변호사가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재직하며 이 전 대통령의 핵심 혐의인 BBK, 도곡동 땅 관련 수사를 실제 지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변호사법 31조는 변호사가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 직무상 취급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변호인단 보강을 위해 대형 법무법인들을 접촉하고 있지만, 다수의 로펌들이 정치적 부담 등을 이유로 수임을 꺼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오는 22일 오전 10시 30분 영장실질심사가 예고돼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에서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그가 헌정사상 네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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