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나라의 국적기에서는 시그니처 칵테일, 와인, 맥주 등을 제공한다. 알아두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특별한 한 잔으로 이용할 수 있다.

사진=리빙센스 박형인

미식에 관해서는 미쉐린 가이드란 좋은 플랫폼이 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경험하면 좋다’더라는, 비교적 믿음직스러운 지표다. 게다가 접근성도 꽤 좋다. 아직 술에 관해선 그런 것을 못 봤다. 그래서 어떤 술이 어떤 헤리티지를 가졌는지, 어떤 향과 맛을 지녔는지 에디터는 늘 방황하며 공부 중이다. 그래야 기사를 정확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술을 주제로 1년 넘게 칼럼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 넓고 술 종류는 정말 많다.

 

얼마 전 출장을 위해 싱가포르 국적기를 탔다. 비행기가 뜨고, 곧 승무원들이 음료가든 카트를 밀고 등장했다. 사람들이 뭘 마시나 관찰했다. 너도나도 손에 예쁜 컬러의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노란색과 짙은 다홍빛이 그러데이션된 액체가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겨 있었다. ‘싱가포르 슬링’은 레몬 리큐어와 체리주스 그리고 브랜디로 맛을 낸 칵테일이다. 싱가포르의 석양을 연상케 하는 화사한 빛깔의 칵테일로 싱가포르 한 호텔에서 고안해냈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작가 서머싯 몸이 ‘동양의 신비’라고 예찬해서 더 그렇다. 싱가포르항공에서는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음료 메뉴에 싱가포르 슬링을 넣어뒀다. 요청을 하면 승무원이 그 자리에서 만들어준다.

 

원래의 레시피대로는 아니고 레몬주스와 체리주스에 진을 조금 가미한다. 셰이킹을하는 건 아니지만 그 술이 가진 느낌을 향유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다 갖췄다. 새콤하고, 달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싱가포르의 석양이 찰랑거렸다. 그제서야 내가 타국으로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상에 젖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항공사는 술에 관한 한 꽤 정확하고 쓸모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가이드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국적기 핀에어에서는 ‘블루 스카이’란 시그니처 음료를 제공한다. 블루 스카이는 블루베리 리큐어와 핀란드산 진을 섞은 핀란드식 진토닉이다. 예상했겠지만 핀란드는 고급스러운 맛을 가진 진과 블루베리의 주요 생산국이다. 

 

술 Living CAST JOY OF TASTE 은 문화다. 어딘가에서 자주 마시고 즐겨 찾는 술이 있다면, 그건 대개 그 지역의 역사와 지형, 국민성, 심지어 기후와도 관련이 있다. 핀란드는 평야 지대가 많아 곡물을 많이 재배한다. 추운 날씨를 견디고 자란 곡물과 과일, 지구 최고의 청정 지역에서 공수한 물. 이런 팩트들이 핀에어의 블루 스카이 한 잔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다. 타국적의 항공기에서 그 나라의 술을 마시는 건 학습에 가깝다.

 

독일 항공 루프트한자에서 맥주 대신 자국의 화이트 와인을 선보이는 것도, 네덜란드 국적기에서 하이네켄의 드리프트 생맥주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에어프랑스에서 모든 기내 승객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소믈리에가 선별한 샴페인을 웰컴 드링크로 제공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여행을 떠나기 전 관련 국가나 지방의 정보를 알려주는 블로그나 책을 독파하는 것보다, 되도록 해당 국적 항공기를 이용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시그니처 음료에 대해 묻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아쉽게 느낀 점이 있다면, 아직 우리의 술을 제공하는 국내 항공사가 없다는 것. 국내 국적기에서 소주나 막걸리를 만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되도록 정확한 정보들을 취합, 수집하고 술 공부를 더해야 하는 에디터의 입장에서는, 각 항공사가 제공하는 주류 메뉴부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독자들에게 더 좋은 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다 싶다. 어쨌든 미‘술’린 가이드를 찾아 기쁘다. 기념으로 오늘도 한 잔!​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