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비슷한 상품 공해…고객이 원하는 게 이런걸까?

어릴 때 들었던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를 최근 다시 듣곤 한다. 온통 규격화된 세상을 답답해하는 어린이 정서가 담긴 노래다. 하지만 어린이 시각을 빌어 네모를 넘어 둥글게 살아보자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가사 가운데 세상은 온통 네모난 것들뿐인데라는 구절은 마치 현재를 얘기하는 듯한 날카로움이 있다. 점점 주변에서 새로운 걸 찾기가 쉽지 않다.

 

IT 변화를 주도하던 스마트폰은 더 이상 새로운 변화가 나오지 않는다. 한동안 둥근 모서리 디자인부터 업계 최초란 다양한 수식어를 양산했지만, 어느 순간 눈에 띄는 신기능이나 디자인이 쏙 들어갔다. 5.8~6인치 크기의 디스플레이에 듀얼 카메라, 지문인식 등 비슷비슷한 기능을 담고 있을 뿐이다. 기술적 한계라고 얘기한다. 하드웨어 제품이라 일면 수긍된다.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닌 첨단 금융 서비스에서도 똑같은 모습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모 은행에서 신상품을 선보이고, 조금이라도 주목을 받는다 싶으면 똑같은 상품이 경쟁사로부터 쏟아진다.

 

A은행이 1인 가구를 겨냥한 상품을 출시하면, 곧바로 B, C은행에서 이름만 다른 동일한 상품이 나온다. B은행이 영업점 체계를 거점 중심으로 바꾸는 프로세스 혁신을 추진하면, AC은행도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상품부터 전략까지, 오프라인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비슷비슷한 상품들이 범람하고 있다. 은행간 베끼기 전략이 겹치고 겹치다보니 업계에서도 누가 업계 최초인지, 누가 베꼈는지에 대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설사 주목 받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새롭다 싶으면 일단 베끼고 보는 것이 국내 금융권 서비스 전략의 실체라고 부정하기 힘든 환경이다.

 

소비자들은 어떤 은행을 가든 비슷한 상품을 만날 수 있다. 모든 시중은행과 심지어 국책은행도 마찬가지다. 상품이 비슷하니 집에서 가깝거나 귀에 익숙한 은행이 주거래은행이 된다. 서비스 차별화에 집중하는 은행이 어려움을 겪는 출발점이라 하겠다.

 

독창성도, 독특함도, 개성도 말살된 그저 똑같이 빠르게 나온 제품들은 결국 소비자들의 무료함만 양산한다. 마치 자신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보지 못한 채 외부 시선에 따라 마구잡이로 성형한 성형미인’, ‘성형괴물의 길을 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결과는 누구나 안다.

 

제품을 적시에 내놓은 것은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기업의 핵심 역량이다. 소비자 수요에 맞춰 제품을 출시하고 변화에 따라 차기 상품을 선보이는 것은 경영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인력으로 개발 단계를 뛰어넘어 남의 상품과 비슷한 상품을 내놓으려고 한다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부작용을 정당화하는 경쟁 논리 대신 각각 은행 고유의 가치에 집중하는 경영 변화를 기다려본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장 수요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새롭다는 핑계 속에 독창성을 잃고 남이 하는 것만 찾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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