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피소→체포영장→여권반납→행정소송 패소, 法 “강제추행 개연성…질병·임상치료 근거 빈약”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지난 2013년 10월 동부제철 당진공장에서 열린 임원회의에 참석한 모습. / 사진=연합뉴스


여비서를 상습 강제추행 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해외에 머물며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냈지만 졌다.


법원은 김 전 회장이 강제추행죄를 범했다고 볼 개연성이 있고 질병의 구체적 상태와 정도, 미국에서 반드시 임상치료를 받아야하는 지에 대한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11일 자신의 비서로 근무하던 여성 A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A씨는 수사기관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김 전 회장이 2017년 2월 7일부터 같은해 7월 24일까지 총 43차례에 걸쳐 강제추행을 했고, 7월 14일 폭행도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의 스마트폰 등에 담긴 김 전 회장의 추행 영상과 녹취록도 함께 제출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수서경찰서는 김 전 회장에게 11월 9일 피의자신문을 위해 출석하라고 요구했으나, 김 전 회장은 세 달 전인 7월 28일 해외로 출국한 상태였다.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은 경찰에 ‘김 전 회장이 30년간 만성 간질환 및 만성 신장질환 등의 질병을 앓아왔고, 현재에도 질병에 대한 적극적인 임상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1차 임상치료가 종료될 예정인 2018년 2월 귀국해 조사에 임하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 또 ‘임상치료가 종료되면 귀국해 성실히 조사를 받을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의 출석서약서도 함께 제출했다.

하지만 경찰은 11월 13일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외교부에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 해줄 것을 신청했다. 외교부는 같은 해 11월 17일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김 전 회장은 여권이 무효화 되자 이번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윤경아 부장판사)는 김 전 회장이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여권 발급 제한과 여권 반납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김 전 회장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여권법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로 기소중지 되거나 체포영장·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람 중 국외에 있는 사람에 대해 여권의 발급 또는 재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면서 “원고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정하고 있는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원고가 해외에 체류해 그 처분사유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김 전 회장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가슴 등 신체부위를 강제로 만지거나 입을 맞추는 등 행위를 했다고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김 전 회장과 피해자의 대화를 녹취한 녹취록, 피해자와 동료들 사이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관련자 진술 등도 피해자의 주장과 부합한다”면서 “원고가 강제추행죄를 범했다고 볼 개연성이 있고, 이를 뒤집을 만한 사정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랜 지병으로 임상치료 등을 받아야 하는데도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여권을 무효화 한 것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출한 내용은 만성 간질환, 만성 심장질환 등의 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받아왔고, 이번에도 이 치료를 위해 시험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라며 “이 자료만으로 질병의 구체적인 상태와 정도, 원고에 대한 구체적인 치료 내지 처방 내역, 원고가 현 시점에 반드시 미국에서 임상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알 수 없고 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사전통지 및 처분서 송달과 관련된 ‘절차적 하자’와 관련된 주장도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본안소송과 함께 외교부 처분의 효력을 중단해 달라며 집행정지 신청도 냈지만 기각됐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항고 역시 지난 1월 기각됐다.

 

한편, 김 전 회장은 A씨가 성추행을 빌미로 거액의 돈을 요구해 왔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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