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상황 반전시킬 환경 만들어야

전쟁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명장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승리의 비결 중 하나는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싸운다는 점이다. 이 점은 철강 관세를 두고 협상을 벌여야 하는 우리 정부에게도 해당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백악관에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 수입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규제조치 명령에 공식 서명했다. 이미 예고된 조치였지만 서명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철강업계가 우려를 표시했다.

이번 조치는 서명일로부터 15일 후인 23일부터 효력을 갖게 된다. 다만 아직 최종적으로는 국가별 제외 협상이 남아 있다.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한국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될 수 있다. 협상은 15일부터 진행된다. 

한국 철강 산업의 운명을 결정지을 협상이지만 전망은 밝지 못하다. 한국 정부는 이기기 힘든 환경에서 싸움을 시작해야 해서다. 협상력 측면에서 한국은 이미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강대국과의 협상은 대부분 이길 수 없는 환경에서 시작하지만 이번 협상은 상황이 더욱 불리하다. 철강 수출국 다수와 면제 가능성을 놓고 경합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공급자가 다수인 상황에서 철강 관세 면제를 얻기 위해 다른 나라와 경쟁해야 한다.

캐나다와 멕시코, 호주 등이 이미 철강 관세에서 제외되기로 한 점도 한국에게는 불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미국내 철강 수출 3위 국가다. 

1위인 캐나다와 4위 멕시코가 제외된 마당에 한국마저 제외될 경우 미국내 철강 수입 물량의 3분의 1가량이 제외된다. 이 경우 사실상 이번 조치가 유명무실해진다. 이번 조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철강 산업 근로자의 이익을 고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국가가 관세를 면제받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번 조치에서 면제 받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협상카드로 무엇을 내놓을지 경쟁을 벌여야 할 수 있다.

협상을 위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우리에게 불리하다. 15일부터 협상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이번 조치의 효력 발생일인 23일까지 남은 시간은 채 열흘이 안된다. 미국 정부는 이 기간 내에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을 경우 관세를 적용할지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도 불리한 요소다.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미국 정부는 국가별 제외 협상에 대한 세부 사항에 대해서 즉시 알리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협상 담당자가 누구인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이기기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보다는 주요국과의 공동 대응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관세 제외 국가에 포함되지 않은 주요국들은 상응하는 조치를 예고한 상태다. 이기기 어려운 환경에서의 싸움에 연연하기 보다는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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