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수사기관 소환 불응하며 정부 상대 소송 제기
여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된 뒤에도 해외에 머물며 경찰 소환에 불응한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정부를 상대로 여권취소를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윤경아 부장판사)는 8일 김 전 회장이 지난해 11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여권 발급 제한과 여권 반납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김 전 회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자신의 비서로 근무하던 A씨로부터 피소됐다. A씨는 ‘김 전 회장이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회사 사무실에서 상습적으로 추행했다’며 김 전 회장을 고소했다. A씨는 자신의 스마트폰 등에 담긴 김 전 회장의 추행 영상과 녹취록을 경찰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경찰은 세 차례에 걸쳐 김 전 회장 측에 출석요청서를 보냈으나, 김 전 회장은 “치료 목적으로 국외에 있다”며 불응했다. 당시 사측은 “2013년~2015년 동부그룹 구조조정과정에서 회장님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다”며 “치료 목적으로 국외로 출국한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경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의뢰하면서 외교부에 여권을 무효화 해줄 것을 신청했다. 김 전 회장은 여권이 무효화 되자 이번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DB그룹 관계자는 이번 판결 결과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며 “김 전 회장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소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김 전 회장이 치료를 중단하기 어려운 사정 등이 있다”면서 “치료가 끝나는 대로 의사의 허락을 받아 귀국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전 회장은 1969년 24세의 나이로 동부그룹의 모태인 미륭건설을 설립했다. 미륭건설은 1973년부터 1980년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시장에 진출해 20억 달러의 공사를 수주하면서 DB그룹 기반을 닦았다.
DB그룹은 이후 동부고속운수, 동부관광을 세우고 삼척산업, 한미면업, 대영실업, 부산운수 등을 인수하는 등 규모를 키웠다. DB그룹은 1990년 20대 그룹에 진입했으며 2000년 재계 순위 10위까지 올랐다. 2013년부터 구조조정에 돌입한 DB그룹은 동부건설‧동부제철 등 핵심 계열사를 정리했다. 2016년 재계 순위는 35위까지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