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수사기관 소환 불응하며 정부 상대 소송 제기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지난 2013년 10월 동부제철 당진공장에서 열린 임원회의에 참석한 모습. / 사진=연합뉴스


여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된 뒤에도 해외에 머물며 경찰 소환에 불응한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정부를 상대로 여권취소를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윤경아 부장판사)는 8일 김 전 회장이 지난해 11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여권 발급 제한과 여권 반납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김 전 회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자신의 비서로 근무하던 A씨로부터 피소됐다. A씨는 ‘김 전 회장이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회사 사무실에서 상습적으로 추행했다’며 김 전 회장을 고소했다. A씨는 자신의 스마트폰 등에 담긴 김 전 회장의 추행 영상과 녹취록을 경찰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경찰은 세 차례에 걸쳐 김 전 회장 측에 출석요청서를 보냈으나, 김 전 회장은 “치료 목적으로 국외에 있다”며 불응했다. 당시 사측은 “2013년~2015년 동부그룹 구조조정과정에서 회장님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다”며 “치료 목적으로 국외로 출국한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경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의뢰하면서 외교부에 여권을 무효화 해줄 것을 신청했다. 김 전 회장은 여권이 무효화 되자 이번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DB그룹 관계자는 이번 판결 결과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며 “김 전 회장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소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김 전 회장이 치료를 중단하기 어려운 사정 등이 있다”면서 “치료가 끝나는 대로 의사의 허락을 받아 귀국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전 회장은 1969년 24세의 나이로 동부그룹의 모태인 미륭건설을 설립했다. 미륭건설은 1973년부터 1980년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시장에 진출해 20억 달러의 공사를 수주하면서 DB​그룹 기반을 닦았다.


DB​그룹은 이후 동부고속운수, 동부관광을 세우고 삼척산업, 한미면업, 대영실업, 부산운수 등을 인수하는 등 규모를 키웠다. DB​그룹은 1990년 20대 그룹에 진입했으며 2000년 재계 순위 10위까지 올랐다. 2013년부터 구조조정에 돌입한 DB​그룹은 동부건설‧동부제철 등 핵심 계열사를 정리했다. 2016년 재계 순위는 35위까지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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