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주장 놓고 찬반 양론 팽팽…“발언권 막는 등 공익 해쳐” vs “사회적 평가 심각하게 훼손”

사진=셔텨스톡


성범죄 피해를 알리는 ‘미투’ 운동이 확산한 가운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폭로해도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이 피해자의 발언권을 가로막는 등 공익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실 적시로도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을 폐지할 수 없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우리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벌금에 처한다’(307조 1항)고 규정한다. 신문, 잡지, 라디오 등 출판물을 통해 명예훼손이 이뤄질 경우 전파성이 더 크다는 이유로 가중 처벌된다.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역시 처벌대상이다. ‘비방할 목적’이라는 요건이 전제돼야 하지만 처벌 수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법보다 무겁다.

문제는 이 조항들이 진실을 폭로하는 입장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폭로가 사실이더라도 그 내용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등 ‘자기 검열’을 할 개연성이 상당하다. 또 성범죄 가해자의 역고소로 2차 피해를 입는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여성운동계 등을 중심으로 사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전날 거리 선전전을 펼친 한 여성단체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움직임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마감된 청와대 청원에서는 4만3000여명이 이 조항을 폐지하자는데 동의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자유권인 표현의 자유와도 대립한다. 조항 폐지를 주장한 한 법조인은 “사실적시를 통해 침해될 가능성 있는 명예는 체면, 위신 등 과장된 것이지만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으로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다”면서 “과장된 명예를 형벌로 보호하고 있는 해당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인의 명예를 지키는 최소한의 규제로서 존치돼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12월 2009헌마747 결정에서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명예의 보호도 표현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면서 “국가가 자신의 명예를 보호해 주리라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공적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수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공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명예가 보호되지 않는다면) 일반 국민은 공적 토론에 참여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는 것에 주저하게 될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명예의 보호와의 관계에서 제한을 받고 있음을 확인했다.

적시된 사실이 공적인 생활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경우 문제는 커진다. 예를 들어 개인의 질병 내역이나 성 취향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대중에 공개되면 폭로의 대상자는 사회적 평가가 심각하게 훼손될 가능성이 크고 이를 돌이킬 방법도 없다.

적시된 내용에 사실과 의견이 혼재된 경우도 있다. 사실에 기초하더라도 왜곡된 의혹을 제기하거나 편파적인 의견이 추가로 적시되면, 이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다름이 없다.

백남기씨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한 방송사 기자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백씨의 둘째딸인 민주화씨가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서 발리로 떠났다는 내용은 사실이지만 “매정한 딸” “아버지를 안락사시킨 셈”이라는 기자의 주장은 명예훼손의 여지가 상당하다. 검찰은 이 기자를 사실관계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기소했으며, 유족 측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도 그 피해자가 당하는 정신적, 사회적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면서 “공익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폭로에는 위법성을 조각하는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행 법제 아래서도 건전한 사회 비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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