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부재 논란에 ‘보는 관점 다르다’ 답한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기준 논쟁 아닌, 왜 혁신 문제 삼는지 살펴야

기알못’(기계 알지 못하는)의 첫 스마트폰은 아이폰4’였다. 제품 이름처럼 4년간 썼다. 더 오래 쥐고 있을 요량이었다. 길에서 떨어져 액정이 깨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액정을 바꾸려다 약정을 바꿨다. ‘기알못이면서 이번에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궁금했다. 올해는 삼성전자 갤럭시S6를 손에 쥔 지 4번째 해다.

 

‘4’의 저주일까. 최근 이 녀석이 말썽이다. ‘오래 쓰니 느려진다는 게 허튼 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갈아탈 마음이 안 생긴다. 더는 기알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IT(정보기술) 담당 기자로 일했다. 애플리케이션 실행을 위해 어떤 부품이 열일하는지,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저장하려면 또 어떤 부품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됐다. 배터리의 중요성도 여실히 깨닫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무엇이 ABC인지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아무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 늘 손에 쥐고 있는 제품이 느려지니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그게 전화를 불통으로 만들거나 카카오톡 에러를 야기하는 건 아니다. 팟캐스트나 음악 청취에도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뉴스구독이니 느리다고 폰까지 바꿀 상황도 아니다. 유일하게 하는 게임인 ‘OOO 2017’ 구동에 불편함이 있지만 어차피 하루 30분밖에 안한다.

 

신작을 몰라서도 아니다. 일 때문에 새 플래그십을 꼭 체험해본다. 최근 스마트폰이 3년 전 제품보다 구동 성능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디자인도 매끄러워졌다. 허나 이를 두고 진화라 말하기는 어렵다. 갤럭시S9을 두고 “혁신이 빠진 ‘놀거리’만 앞세웠다”고 평한 건 기자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관련기사: 혁신 빠진 ‘놀거리’ 앞세운 갤럭시S9…아이폰X 떠오르네) 바다건너 ‘뉴욕타임스’는 “고성능 카메라 외에 디자인은 전작에 비해 바뀐 게 없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입길에 오르는 게 불편하긴 했나 보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IM 부문장)은 MWC가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혁신이 없다고 하는데, 혁신을 어떤 관점에서 볼 지가 중요하다. 과거엔 기술을 개발해 소비자에게 강요했던 시기였다면, 지금은 아니다. 소비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능에 편리성을 높이는 게 혁신”이라고 말했다. 고 사장의 말대로라면 갤럭시S9도 혁신 제품일 수 있다. 그는 “소비자들이 체험해보면 달라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고 사장이 생각하는 ‘혁신’이란 뭘까. 사용자를 닮은 아바타를 만들어주는 ‘AR(증강현실) 이모지’일까? 미세한 물방울까지 담아낸다는 ‘초고속 카메라’일까? 혹은 두 개의 스피커와 고출력 앰프로 기존보다 약 1.4배 강력하고 균형 잡힌 사운드를 전달한다는 ‘스테레오 스피커’일까? 스마트폰의 ABC를 살피는 기자에게는 이것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혁신’으로 보인다. 갤럭시S9과 S8은 ABC 중에도 A라 할 만한 램(RAM)과 메모리, 배터리 용량이 아예 똑같다.

제조사들은 ‘혁신의 부담’을 자주 토로한다. 말은 바로 하자. 소비자들이 해마다 혁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제조사들이 연례행사처럼 신작을 내놓는다. 엊그제까지 TV서 전작의 PPL(간접광고)을 봤는데 플래그십이 또 나왔다. 마케팅 포인트는 늘 도돌이표처럼 ‘역대 최고의 제품’이다. 과장에 가까울 만큼 분위기를 띄우는데 소비자가 혁신을 기대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가격도 늘 오른다. 갤럭시S7은 83만6000원에 팔렸었다. 갤럭시S9은 이보다 15% 가까이 올랐다. 갤럭시S8의 출고가도 93만5000원에서부터 시작했었다. 제조품 물가가 2년 만에 15% 가까이 상승하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혁신 부재의 그늘은 더 넓은 곳으로 드리운다. 삼성전자가 한국경제서 차지하는 위상 탓이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슘페터상’ 수상작 ‘Schumpeterian Analysis of Economic Catch-up’에서 ‘롱 싸이클’과 ‘쇼트 싸이클’이라는 경제 분석 개념을 제시했다. 쇼트 싸이클 산업은 기술 수명이 빠르게 소멸한다. 따라서 추격자에게 유리하다. 대표적인 게 스마트폰 등 IT산업이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의 두 번째 캐시카우(cash cow)다. 후발국이었던 한국은 이 틈새를 잘 파고들어 선진국 코앞에까지 다다랐다.

다만 이 교수는 2014년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쇼트 사이클 산업은 추격하기도 쉽지만 추격당하기도 쉽다”며 “삼성은 바이오 부품소재 등 ‘롱 사이클’ 산업으로 중심축을 점차 이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물며 스마트폰 하위 기능의 일부일 뿐인 카메라나 이모지가 ‘롱 사이클’일리가 있을까. 중국 화웨이는 트리플 카메라를 탑재한 P11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갤럭시S9 판매량은 S8 판매량 추정치(3750만대 안팎)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별 다른 적수가 없는 덕분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한 해 실적에 만족해 성과급만 나누기에는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그래서다. 사장이 ‘혁신의 기준’을 두고 논쟁하려하기 전에 왜 혁신을 문제 삼는 지를 생각해보았으면 어땠을까. ‘삼성전자라면 다 싫다’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흔한 배설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만든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쓰는 소비자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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