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2심 양형 이유 '괴리감'…‘처벌불원·피해회복’ 감경인자 배제돼야

“처벌불원 또는 상당 부분 피해 회복된 경우.”


기자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판결문을 읽고 뜨악한 기억이 있다. 이 부회장의 양형 이유를 살펴본 것인데, 횡령 혐의에 대한 감경사유가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2심은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혐의 부분에서 특별감경인자로 ‘처벌불원’을 적용했다. 이는 횡령 범죄의 피해자인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형을 줄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2심은 또 이 부회장의 횡령 범죄에 따른 삼성전자의 피해가 상당부분 회복됐기 때문에 형을 줄인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81억원(2심에서 인정된 횡령액은 36억이다)을 모두 변제했기 때문에 이를 감경인자로 적용하겠다는 설명이다.

2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36억원의 횡령 범죄의 법정형은 2~5년이지만, 위 감경사유 적용으로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권고형은 1년 6개월~3년으로 줄어들었다.

이밖에 재산국외도피 혐의가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된 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관련된 뇌물 등이 무죄로 판단돼 뇌물액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점(횡령액이 절반으로 줄어든 이유다)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논란이 상당했던 각 범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법알못’(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일반인의 시각에서 횡령 혐의에 대한 감경사유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회사가 오너의 처벌을 원한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엄격하게 따지면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의 법인격은 다르지만, 그가 삼성전자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논리라면 배임횡령 범죄를 저지른 모든 오너는 감경요소로 사측의 ‘처벌불원’이 적용될 것이다. 또 범죄자가 횡령액을 갚을 정도의 재력가라면 ‘피해회복’을 감경사유로 악용하는 사례도 상당할 것이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취득한 주식을 모두 회사에 반환, 징역 2년, 집유 3년)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횡령금 전액을 각 회사로 반환, 징역 3년, 집유 5년),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범행 이후 거의 대부분의 피해를 회복한 점, 징역 3년, 집유 5년)이 검찰 수사 이후 기업 손실을 보전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유로 낮은 처벌을 받는 데 그쳤던 전례가 있다.

문득 삼성 계열사 직원 한모씨가 회사자금 10억원을 횡령해 최근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떠올랐다. 이 직원에게 중형을 선고한 수원지법 형사합의15부는 한씨의 ▲범행수단과 방법이 계획적이고 ▲횡령 금액이 약 10억원으로 거액이며 ▲단기간 내에 거액을 횡령한 점을 양형 사유로 들었다. 사측은 처벌을 원했을 것이고 피해액도 변제되지 않았으리라.

취재를 위해 다수의 법조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횡령 범죄에서 중요한 부분이 피해자의 처벌의사, 피해회복 여부이기 때문에 재판부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법이 그렇다고 하니 수긍해야 했지만, 감정과 법 적용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유사한 답변에 지칠 무렵 한 변호사로부터 “말장난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판결문을 해독(解讀)하지 말고 언론인으로서 비판을 하라는 충고였다. 그는 재판부의 양형 적용을 두고 ‘말장난’이라는 거친 언어로 비판했다. 법리(法理)의 정수(精髓)인 판결문을 내놓고도, 언론 인터뷰로 여론전을 한 정형식 부장판사에 대한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주장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배임횡령죄 처벌기준은 개선돼야 한다. 대기업 지배주주와 주요경영진의 배임횡령 범죄에서 감경인자로 ‘처벌불원·피해회복’이 배제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별도의 양형기준까지 제정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현행 감경사유가 유지된다면 경영진의 배임횡령​ 범죄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피해회복을 위한 자산만 있으면 실형을 면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팽배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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