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 미국·영국·유럽 긴축 가속 가능성…한국은 물가상승률 낮은데다 대외 불확실성 많아 고심 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은행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3차례 기준 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시장에서는 횟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영국은행(BOE) 역시 시장 예상보다 더 이른 시기에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긴축에 소극적이었던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중앙은행(BoJ)도 정상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각국의 경기 회복이 견조한 데다 큰 움직임이 없던 물가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 긴축 속도를 부추기는 촉매제가 됐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은행에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되고 있다. 통화 완화적 기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여전한 까닭이다. 특히 다른 나라와는 상대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제갈 길 가기에는 주요국과의 금리차 역전 등 우려가 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예상 외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세 번 넘게 올리거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올리거나 ECB등 다른 곳에서도 긴축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분명히 애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주요국 통화 정책 변화만을 보고 금리를 결정하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 “물가 상승 압력 높아졌다”··· 선진국, 통화 정상화 악셀레이터 밟을까

지난해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 기조 변화에 앞장섰다. 미국은 10년만인 2015년 12월 기준 금리를 인상한 이후 지난해에만 3차례 금리 인상에 나섰다. 영국 역시 지난해 11월 10년만에 금리를 올리면서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축소했다. 캐나다도 6년7개월 만인 지난해 7월 금리를 인상했고 이어 9월에도 한 차례 추가 인상에 나선 바 있다.

올해도 기준금리 인상 행렬은 지속할 전망이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12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올해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이날 공개된 점도표에 따르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올해 3번, 내년 2번의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캐나다 중앙은행도 올해 금리를 세 차례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통화 정상화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준이 올해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것과 달리 네 차례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다섯 차례 인상도 예상한다. BOE는 이달 8일 통화정책위원회(MPC)에서 기준금리를 연 0.5%로 동결했지만 MPC 위원 9명 전원이 인플레이션을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문구에 동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이를 사실상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라 보고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긴축에 소극적이었던 ECB나 BOJ도 올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1일 FT 보도에 따르면 ECB는 이날 공개한 지난해 12월 통화정책 회의록에서 “경제가 계속 확장되면 올해 초 통화정책에 대한 견해나 선제 안내 관련 문구가 재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역시 지난달 9일 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축소한다고 발표하면서 긴축 신호를 보낸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 배경에는 주요국에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진 데 있다. 오는 3월 금리 인상이 유력한 미국은 소비자 물가가 올해 1월, 전월 대비 0.5% 올라 시장 예상(0.3% 상승)을 크게 웃돌았다. 게다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고용과 임금 관련된 지표들도 올들어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는 5월에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영국 역시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3% 상승하며 시장 전망치(2.9%)와 중앙은행 물가 목표치(2%)를 상회한 상황이다.

◇ 고심 깊어지는 한국은행, 향후 행보 주목

이러한 상황은 한국은행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 총재도 지난 2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국·스위스 통화스와프 협정 서명식 후 기자들과 만나 주요국의 긴축 속도 확대 움직임에 대해 “경제 전망할 때에도 그렇고 경제 주체들이 올해 경제운용 계획을 짤 때에도 미국이 세 번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계획을 짰다”며 “예상 외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세 번 이상 올리거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올리거나, 유럽중앙은행(ECB)등 다른 곳에서도 완화를 줄이고 긴축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분명히 애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30일 기준금리를 연 0.25%포인트 인상하며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축소했다. 이는 2016년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이후 17개월만에 기준금리를 바꾼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만 놓고보면 2011년 6월 이후 6년 5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3%대 달성이 가능해지면서 ‘중기적 흐름에서 경기 회복세 지속’이라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요건이 충족된 까닭이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상하는 데는 신중한 상황이다. 금리 인상 요인과 동결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기준 금리 인상을 또 언제, 어느만큼 할 것인 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우선 주요국 긴축 확대는 기준금리 인상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요국과 금리차가 벌어지게 되면 자본 유출 등 한국 경제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물가 상승 압력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 낮은 것은 금리를 인상하기에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8%를 기록한 이후 11월 1.3%, 12월 1.5%, 올해 1월 1%로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 수준인 2%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보호무역주의 강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거시경제 연구원은 “최근들어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 한반도 리스크 재발 가능성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도 높아졌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쉽게 예단해 금리를 올리거나 동결할 경우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국들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한국은행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사진=뉴스1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