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년 중징계로 촉발…‘제도 개선’ 정치권·법조계 한 목소리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문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 오마이뉴스가 1년간 법원 출입을 제재 당하면서 현행 법원의 판결문 공개제도를 합리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도 법원 판결문 공개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최근 머리를 맞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출입기자단은 오마이뉴스가 최근 ‘공범자 이재용 vs 피해자 이재용 엇갈린 1·2심 판결문 전문공개’라는 제목으로 2심 판결문 전문을 실어 보도하자 판결문 전문 공개는 기자단 내규 위반이라면서 지난 21일 오마이뉴스에 출입정지 1년의 중징계를 내렸다.

법원 기자단은 징계 사유로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 1~2심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며 이 관례를 따르지 않을 경우 법원의 협조를 받기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또 당사자나 이해관계자 아니면 판결문을 제공받을 수 없고, 판결문 원문에는 사적인 정보나 소송 관련자와 직접 관계없는 사항들이 기재돼 있어 전문이 공개 되서는 안 될 이유가 많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법원 기자단은 법원과 ‘신사협정’을 통해 제공받는 판결문이 그대로 온라인에 공개될 경우 더 이상 이 신사협정을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결정으로 오마이뉴스는 1년 동안 기자실 출입을 할 수 없게 됐고, 검찰 관계자로부터 백브리핑 형식으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티타임 참여도 제한됐다. 취재편의를 위해 법정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풀 취재’도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건이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이었고, 판결문 공개로 국민의 알권리가 오히려 보장됐다는 이유로 기자단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오마이뉴스가 2014년 9월 25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판결문 전문을 공개했을 때에는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다가, 유독 이재용 부회장의 사례에서 기자단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기자단의 조치와 별개로 이 부회장 측은 1심 선고 직후인 지난해 8월 31일 ‘판결서 등 열람·복사 제한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법원은 이 부회장 측의 판결문 비공개 요청을 받아들였다. 일반 시민들은 법원을 통해 이 부회장의 판결문은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판결문 비공개 결정은 헌법에 배치됨과 동시에 형법과 민법에 판결문을 공개하도록 한 조항과 대립한다. 형사소송법 제59조의3(확정 판결서등의 열람·복사)는 누구든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판결서 또는 그 등본, 증거목록 또는 그 등본, 그 밖에 검사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물건의 명칭·목록 또는 이에 해당하는 정보를 보관하는 법원에서 해당 판결서 등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민사소송법 제162조(소송기록의 열람과 증명서의 교부청구) 역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확정판결이 아니더라도 각급 법원은 ‘판결서 사본제공신청’이라는 행정서비스를 통해 익명 처리된 판결문을 제공하고 있다. 

 

의사진행 발언하는 금태섭 의원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6년 10월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이 부회장 판결문 제재 논란과 별개로 법원의 판결문 공개제도는 그동안 수없이 문제점이 많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적 주목을 받는 사건의 판결문을 최대한 빨리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민들이 알고 싶은 판결이 있을 때 이를 찾아보는 것도 너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라고 돼 있지만, 현재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시스템을 통해 검색 가능한 판결은 각급 법원 판결의 0.003%에 불과할 정도로 판결문이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민병두 의원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사법절차 투명화를 위한 판결문 공개 방안’ 토론회를 개최하고,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함과 동시에 개선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토론회 발표자로 나선 정차호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공개법정에서 공개된 당사자의 성명은 더 이상 개인정보도 사생활도 아니어서 비실명화를 통해 보호할 필요가 없다”면서 “판결의 전면 공개가 대리인의 의견서 품질을 높이고, 나아가 판결서의 품질을 높이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보평등의 원칙이 법원에서도 실현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확정 판결만 공개하는 현행 헌법과 관련 법률을 넘어 판결서 공개시기를 단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미국은 24간 이내, 영국·네덜란드는 1주일 이내, 홍콩·대만은 송달 후 3일 이내에 판결서가 공개된다”면서 “우리나라도 1주일 이내에 판결서 공개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판결서 1건당 1000원을 요구하는 현행 규정을 벗어나 전면 무료화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는 “판결문 공개는 사건의 당사자의 정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건의 당사자들, 그리고 잠재적인 당사자들인 국민 전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법치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법이 어떻게 해석되고 집행되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그 법치주의는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해 민주주의가 법치주의와 공존하는 데 필요한 법의 정당한 권위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판결문의 공개는 제소율, 항소율, 상고율을 낮춰 법치주의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면서 “판결문 공개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확실성도 낮춰 투자판단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개인정보 보호와 판결문 공개가 대립되는 점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누구나 자신에 대한 정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자의 표현의 자유는 포기된다”면서 “타인에 대한 관찰과 평가가 모두 그 타인의 동의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면 이러한 비판 감시기능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금 의원은 “판결문 공개는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공개 그 자체로 투명한 사법절차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비슷한 판례를 확인할 수 있어 불필요한 소송을 줄일 수 있고 형사 절차에서 전관예우 관행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개혁의 중요요소”라고 밝혔다.

민 의원 역시 “판결문 공개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판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는 방안이 논의되길 기대한다”면서 “판결문 공개가 확대될 수 있도록 입법적·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장기소액연체자 재기지원 및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금융업권 상생 협력 협약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같은 날 대한변호사협회도 ‘합리적인 판결문 공개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김현 회장은 인사말에서 “헌법과 현행법은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든지 확정된 사건의 판결서 등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실제 판결문 공개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면서 “판결문 공개 확대를 통해 사법절차가 투명화 되고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도 향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형사 판결문은 제한적으로 공개해야한다는 신중한 입장도 있었다. 박건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는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면서 “확정되지 않은 판결문의 무제한 공개는 자칫 판결 확정 이전에 피고인에게 사회적으로 유죄판결을 확정짓는 결과가 야기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이 쉽게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 위험성이 더욱 높다”면서 “피고인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비밀 침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오병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결문 공개의 가장 어려운 법적 장애물은 개인정보 보호지만 이는 비식별화 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 실정에서 큰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면서 “판결문과 같이 논리정연하고 대체로 큰 범주에서는 양식화 돼 있는 정형적인 데이터를 자동으로 비식별화 조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지난해 3월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에서 열린 제49대 협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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