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태양광 이어 철강까지 속수무책…타산업 전이 가능성 우려 확대

미국이 한국산 제품들에 대해 강도 높은 통상압박을 진행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등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고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서는 고강도 수입규제안이 마련돼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다음 목표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될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수출을 대기중인 자동차. / 사진=뉴스1

미국이 한국산 제품들에 대해 강도 높은 통상압박을 진행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등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고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서는 고강도 수입규제안이 마련돼 선택 만을 남겨두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음 목표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될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발 통상압박은 숨가쁘게 진행중이다. 지난달 22(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등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세탁기의 경우 120만대까지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초과 물량에는 50% 관세를 부과한다. 태양광 셀의 경우 2.5GW까지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고 초과 물량에는 30%의 관세가 붙는다.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제조사 모두 예상보다 높은 압박 수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압박 수위도 국내 산업계의 예상보다 높았다. 미국 상무부가 이달 16(현지시간) 공개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에서는 대통령에게 세가지 수입규제안을 권고했다. 주요 철강 수출국 12개국에 53%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과 모든 국가의 수출 물량을 2017년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 그리고 모든 국가의 수입 물량에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등 총 세가지다.

 

세탁기태양광 이어 철강까지최악의 시나리오 현실화

 

미국 상무부의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규제안 가운데 핵심은 미국내 주요 철강 수출국 12개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철강제품에 53%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다. 해당 보고서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 제품이 미국 안보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철강 수출국 모두를 미국 안보의 위협으로 지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12개 국가만 특정해서 제재를 가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내 철강수출 상위 20개국 / 출처=미국 상무부 보고서

문제는 한국이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는 12개국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함께 지목된 국가는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러시아·남아공·타이·터키·베트남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고안을 토대로 어느 방안을 적용할지 여부를 오는 411일까지 결정하게 된다. 세 가지 방안 중 무엇이 결정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다만 국내 철강사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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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철강업체 관계자는 미국내 철강 수출 물량만 놓고 보면 한국보다 많은 캐나다는 물론 전통적인 우방국인 일본, 독일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아직 최종 결정이 남았지만 세탁기와 태양광 등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는 점에 비춰볼 때 철강업계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12개 국가에 대한 선별적 관세부과가 최종적으로 결정될 경우 국내 철강사에서는 치명적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상 미국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수입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국내 제품이 53%의 관세를 추가적으로 더 부담할 경우 경쟁력이 없어서다.

 

◇ 한국 정부 WTO 제소현실적으로 실익 적어

 

예상보다 높은 미국의 통상압박 수위에 우리 정부도 즉각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인 동시에 최대의 소비 시장인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이끌어낼 카드가 부족하다. 한국 정부가 기존 설득 작업에 추가할 수 있는 대응 카드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정도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미국 상무부 보고서가 공개된 후 WTO에 한국산 철강·변압기 제품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관세가 부당하다며 제소했다.

 

산업계에서는 WTO 제소 역시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WTO 제소에서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21조 안보예외 조항의 충돌이 예상되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3년여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WTO 제소에서 이기더라도 당분간 미국 시장에 접근이 어렵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예상이다.

 

B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수입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 하더라도 특정 국가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결정이 예외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방안이 없는 정부의 역할에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 넓어지는 압박 범위긴장하는 자동차반도체

 

산업계에서는 미국의 다음 목표로 자동차와 반도체를 꼽고 있다. 자동차는 앞서 열린 한미 FTA 12차개정 협상에서 핵심 사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에 대한 압박은 이미 진행중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부터 한국과 중국, 대만 등에서 수출된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대해 미국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중이다.

 

자동차와 반도체 모두 한국 수출의 대표 품목이라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철강 제품과는 파급력이 다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낸드플래시메모리의 경우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이다. 더구나 반도체는 지난 1996년 체결된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무관세로 거래중이다. 이번 조사로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낸드플래시메모리에서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산업계 타격이 예상되는 등 정황상 한국산 낸드플레시메모리에 대한 압박이 쉽지 않겠지만 비슷한 기대감은 태양광이나 철강 제품 등에서 있었다는 지적이다.

 

국내 최대 반도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세탁기와 태양광전지, 철강 제품 등에서도 미국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근거 없는 기대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도체 사업이 국내 수출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정부에서 미리 대응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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