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도 실효성 찬반 입장 갈려…“미중 경쟁 격화, 여론 모아 원칙 세우고 내부 통합해야”

사진은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동북아 외교 시험대에 섰다. 분단 상황에서 동맹국 미국이 통상압박을 해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러한 통상 압박에 정부는 미국과 안보, 통상 문제는 분리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투트랙 전략에 대해 찬성과 우려로 입장이 갈렸다. 다만 외교 정책의 원칙을 세우고 내부 통합해 미·중 간 경쟁 격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국의 철강 규제 등 통상 압박에 대해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라”고 말했다. 


한미 동맹이긴 하지만 경제 문제는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는 갈렸다. 정부 정책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은 분단국인 한국에 한미동맹이 필요하지만 경제는 따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광현 건국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 통상압박에 결연히 대응하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미국의 추가 통상 압박을 막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며 “우리가 미국과 안보 동맹이라고 해도 우리가 감내할 수 없는 수준으로 통상 압박을 하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다만 정부 방침대로 한국이 국제기구를 통해 제소한다 해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가 제소해서 이겨도 미국이 통상 압박 철회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 경우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과 공조해 압박용으로 보복 조치를 추진할 수 있다. 그러면 미국 내 수출 기업들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안보와 통상을 따로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것은 적절하다. 실효성도 있다고 본다”며 “만약 보수 의견대로 한국이 북한에 압박을 한다고 해도 미국이 한국 통상압박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경제와 안보 모두 미국 입장만 따르는 것은 종속국가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한미동맹은 한반도 문제에선 한국 입장을 수용하고 글로벌 문제에선 미국 입장을 따르는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반면 정부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미 동맹은 아직 비대칭적으로 한국의 힘이 작다. 대미 안보와 통상 분리 전략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기존의 합리적 미국과 다르다. 미국이 동맹을 파기하면 우리 입장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통상압박은 트럼프가 국내정치용으로 하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겐 통상압박을 하지 못하고 우리에게만 하고 있다”며 “한국이 대미 안보와 통상 분리를 아무리 주장해도 북한 변수 때문에 미국에겐 한국이 만만한 대상이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기본적으로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 접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차장은 “미국 내 철강, 세탁기, 태양광 기업들이 어렵다고 불만을 제기하니깐 트럼프가 도와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항상 이래왔다. 70, 80년대도 미국은 일본이 경제적으로 위협이 돼 동맹 관계인데도 일본에 엄청난 수준의 수입과 환율 규제를 했다”며 “지금 미국에 위협이 되는 것은 중국이다. 안타깝게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데 한국이 끼어있다”며 “미국의 한국 철강규제는 중국의 한국 철강 수출에 영향을 주려는 성격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미중간 경쟁이 격화돼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을 이제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중국 세력이 더 커지면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입장을 정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며 “이 때 중요한 것이 원칙과 내부통합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한국은 이러한 준비가 돼있지 않다”며 “정부는 긴 안목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 등 상대방의 수 싸움을 읽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여론을 모아 미·중 사이에서 한국 입장의 원칙을 만들고 내부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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