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안돼 28만5000명 '폭풍' 동의…‘정형식 판사 청원’ 답변 선례와 비슷할 듯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앞줄 왼쪽부터), 박지우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기록을 살피고 있다. 그 뒤로 노선영이 결승선을 향해 역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적혀있는 글귀다. 이어 청와대는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여뒀다.

20일 오후 4시 현재 최다 추천을 받은 청원은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 경기의 후폭풍이 청와대까지 옮아간 셈이다.

참여인원은 28만5000명을 넘어섰다. 답변 기준선을 넘어선 건 만 하루가 채 지나기 전이었다. 그간 선례를 뛰어넘는 속도다. 마치 ‘클릭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모양새다. 이 속도대로라면 해당 청원은 20일 저녁 중 역대 가장 많은 동의를 받은 글이 될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총 36만905명이 동의한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위원직을 파면시켜주세요’가 수위를 지키고 있다.

청와대로서도 마냥 ‘스포츠 문제’라며 답변을 미루기는 어렵게 됐다. 수많은 언론이 달라붙어 사안의 휘발성을 막대하게 키워버린 탓이 크다. 청원 게시자가 “빙상연맹의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엄중히 밝혀달라”라는 표현까지 덧붙인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불똥이 문화체육관광부로도 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다보니 정치권도 논란에 가세하려는 형국이다. 20일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빙상연맹에 대한 문체부의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선수를 위해 존재해야 할 연맹이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선수들을 이용하는 주객전도의 현실을 보며 국민들은 빙상연맹을 ‘적폐’ 세력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매우 강도 높은 논평을 냈다.

이 때문에 답변 시기와 맞물려 청와대에서 누가 나설지도 관심거리로 떠오르게 됐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나 노태강 제2차관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실제 이들 장‧차관이 나설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특별감사를 요구한 청원에는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이 답변에 나섰다.

청와대가 청원 게시판을 구축하며 내놓은 취지대로 각 부처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이 나서야 했다면 조국 민정수석이 답변을 해야 했다. 앞서 조 수석은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에는 직접 답변에 나선 바 있다. 행정부에 사법부 소속 판사를 상대로 감사해달라는 청원 내용 자체가 민감했기 때문이다. 정 비서관도 이를 의식한 듯 “청와대에 재판에 관여하거나 판사를 징계할 권한은 없다”고 답했다.

이번 청원에 청와대가 답변에 나서더라도 이런 선례가 반복될 공산이 커 보인다. 선수 개인의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원에 관련 부처 고위당국자가 답변에 나서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말 많고 탈 많은 ‘빙상연맹’ 문제도 ‘칼로 무 자르듯’ 쉽게 답변에 나설 주제는 아니다.

다만 청와대가 ‘국민 여론에는 귀를 기울여야’ 정도의 표현을 내놓을 가능성은 있다. 앞서 정형식 판사 감사 청원에서도 청와대 측은 “청원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이 가볍지 않은 만큼 모든 국가권력기관이 그 뜻을 경청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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