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상태에서 아이 4명을 데리고 도망친 노예 마거릿 가너는 얼어붙은 오하이오강을 건너 간신히 도피처로 숨어들지만 노예 사냥꾼에게 붙잡힌다. 잡히기 직전, 그녀는 두 살짜리 딸을 칼로

사진=우먼센스 하지영

1856년 1월, 노예 사냥꾼에게 붙잡히기 직전 두 살짜리 딸을 죽인 노예 마거릿 가너. 자신이 낳은 아이를 스스로 죽이도록 몰아붙이는 노예제의 잔혹함은 연이은 선택을 강요한다. 마거릿 가너를 사람으로 인정할 것인가?한갓 재산일 뿐인가?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딸을 죽인 살인죄로 기소되고, 재산으로 치부한다면 무죄로 방면될 것이다. 가너와 그녀의 변호사는 살인죄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실제로 있었던 이 사건을 토대로 토니 모리슨은 <빌러비드>를 쓴다. 도망친 노예 세서는 노예 사냥꾼들에게 잡히기 직전에 아이들을 급히 자신의 주변으로 모은 뒤 그중 한 아이의 목을 톱으로 자른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사람들은 경악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쓸 때 토니 모리슨을 사로잡았던 것은 강물에서 걸어 나와 잔디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 군락을 이룬 나무의 깊은 그늘 속에 자리 잡은 정자에 기대는 한 여자의 이미지다. 

 

실제 사건의 기록은 이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 여자는 어디서 왔을까? 누구일까? 빌러비드. 아름다운 소녀. 그 소녀의 목에는 기다란 흉터가 있고 이마에는 선명하게 찍힌 손톱자국이 있다. 그녀는 어느 날 강에서 걸어 나와 세서의 집으로 간다. 죽은 딸의 영혼 빌러비드는 세서가 마주볼 수밖에 없는 과거의 상처다.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결국은 함께 파멸을 향해 굴러가야 하는 존재. 연약한 소녀였던 빌러비드는 세서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원망할수록 점점 비대해지는데, 특히 임신한 사람처럼 배가 부풀어 오르는 장면은 어머니와 딸이라는 끈질긴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유령과 환상을 빌려 토니 모리슨은 노예제와 자유의 문제를 다각도로 그려낸다. 그녀는 ‘흑인 여성 작가’라는, 어떻게 보면 편견에 가득 찬 칭호로 불리지만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작품의 정체성으로 삼고 파고들어 끝끝내 인종과 성을 넘어서는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다.

 

1989년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 최초’로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직에 오르고, 1993년 ‘미국 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이 타이틀은 단순히 출생이나 피부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예제의 참혹한 역사는 토니 모리슨의 목소리를 타고 복원되고 재생된다.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노래다.

 

토니 모리슨과 그녀의 부모는 노예는 아니었지만 핏줄에 남아 있는 끈질긴 기억은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미친다. 백인을 증오한 아버지가 들려준 흑인 사회의 전설 이야기는 그녀가 이야기를 만들고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인종 차별을 포함한 다양한 차별에 전면적으로 반대했던 어머니의 시선은 그녀의 작품의 단단한 토대가 됐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고전문학을 전공하며 교내 연극 단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던 그녀는 남부 순회 공연 과정에서 남부 흑인들의 실상을 실제로 보았고, 그 경험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빌러비드>는 단순히 노예제의 역사를 소개하거나 비참한 실상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토니 모리슨은 20년 가까이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고 난 며칠 뒤 느닷없이 심장이 뛰는 이상한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불안함일까? 그녀는 이 감정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느낌’이라는 걸 깨닫는다. 순수한 기쁨. 막대한 기대감. 이러한 감정은 해방된 노예를 떠오르게 한다. 현재의 우리에게 자유롭다는 것은 단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는 차원에서 그치지만, 당시의 노예에게는 존재에 대한 개념 자체를 전복시키는 어마어마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자유가 없다는 것은 자식을 낳아야 하지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나 슬픔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도 가지면 안 되는 것이다. 세서는 노예 사냥꾼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아이를 죽이지만, 그런 극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노예 어미들은 자식을 수시로 잃어왔다. 살기 위해 감정이 거세된 이들이 자유를 되찾으면서 자신만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경이롭다. 그들이 갖게 된 ‘짙은 사랑’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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