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담합 고백한 본사는 면죄부·대리점만 과징금 부담…리니언시 제도 논란으로 번져

135억원 상당의 정부 발주 위생용품 구매 입찰서 담합을 벌인 유한킴벌리가 ‘리니언시(Leniency ·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 ’로 과태료가 면제된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본사는 수억원 대 과태료 납부를 면하게 됐지만, 본사 뜻에 따른 영세 대리점들은 여전히 1000만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게 됨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리니언시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 13일 공정위는 유한킴벌리가 조달청 등 14개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한 일반 마스크 등의 구매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사, 들러리사를 정한 후 투찰 가격을 담합한 데 대해 유한킴벌리와 23개 대리점 사업자에 시정명령을 하고 과징금 총 6억 5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유한킴벌리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고도 밝혔다. 당시 공정위는 “앞으로도 공공 입찰담합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담합이 적발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제재할 계획 ”이라고 밝힌 바 있다.

◇ 담합 고백한 대기업, 실제 과징금은 ‘0원’…공정위 조치에 논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유한킴벌리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다만 공정위의 이 같은 ‘엄중한 제재’는 실제로 이행되지 않는다. 유한킴벌리가 리니언시를 이용해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리니언시란 담합 가담자가 담합 행위를 인식한 후 공정위에 신고하면 제재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담합행위를 한 기업들에게 자진신고를 유도하게 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담합 사실을 처음 신고한 업체에게는 과징금 100%를 면제해주고, 2순위 신고자에게는 50%를 면제해준다. 이 제도는 상호 간의 불신을 자극하여 담합을 방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공정위가 부과한 6억500만원 과징금을 뜯어보면 유한킴벌리 본사에는 2억1100만원, 23개 대리점에는 총 3억94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하지만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자진신고한 유한킴벌리가 실제 납부하는 과징금은 결국 0원이다. 오직 직원 수가 10여명 가량인 영세 대리점만 수억원 대 달하는 과징금을 나눠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본사에 대한 검찰 고발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결국 정부가 자진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담합 기업에 면죄부를 주게되는 꼴이다. 이로써 지난 13일의 공정위 발표는 허울인 셈이다.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로 인한 처벌 면제 사실에 대해 위법 당사자와 공정위가 외부에 알리지 않도록 정해져있어 발표는 하되, 기업에 실제 부과되는 제재는 없는 것이다.

19일 유한킴벌리에 따르면 2014년 2월 해당 사업부와 대리점의 입찰담합 행위의 위법성 우려를 인식한 직후, 해당 행위를 금지하도록 조치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공정거래 관련 위법성을 인식할 경우 즉시 신고 및 제도 개선을 하는 정책을 갖고 있고, 이는 회사의 유불리를 떠나 일관되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안 또한 회사가 위법성 우려를 인식한 직후 바로 공정위에 신고한 사례”라면서 “다만 자진신고와 관련된 비밀유지 의무로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설명에도 ‘대기업 봐주기’라는 비판이 쉽게 사그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법을 저지른 대기업이 자진신고만으로 수억원대의 과징금을 면제받는 것은 국민 법감정에 반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리니언시의 허점은 국회서도 꾸준히 지적돼왔다. 공정위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해 6월 인사청문회서 “리니언시 제도나 자정시정 제도와 같이 공정거래법의 집행 관련해 위법행위를 의심받는 사업자가 직접 시정하는 경우 면책해주는 제도가 있다”면서 “이 제도의 연원은 영국, 미국 등 보통법 제도에서 발전했고 우리나라같은 대륙법 체계에선 생소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공정위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제고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리니언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8~2009년 세탁기·TV·노트북 등 소비자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각각 258억1400만원, 188억3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LG전자가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신고해 리니언시 1순위 지위를 얻어 과징금 전액을 감면받았다. 삼성전자 역시 뒤늦게 담합 사실을 실토해 과징금의 50%를 납부한 바 있다. 

 

◇ 전문가들, 제도 보완 필요성 지적…유한킴벌리 “대납 검토”


유한킴벌리 대리점과 같이 억울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승재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은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의 경우 적발키 어렵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들여온 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담합을 주도한 자가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해서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를 들어 담합을 주도했던 주모자는 리니언시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하는 등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 변호사는 “다만 이 경우 주모자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공정위와 검찰 간 협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은 “공정위는 담합을 적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리니언시 제도라고 하며 이에만 의존하고 있다”면서 “이는 담합 사건의 경우 압수수색을 통해서만 밝혀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인데, 공정위가 강제조사권이 아닌 임의조사권만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공정위가 일정 수준 조사를 하다가 이후 검찰에 정보를 넘겨서 수사하는 등 강제조사권을 가진 검찰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개별 대리점 등의 구체적인 과징금 규모를 확인한 후 예상치 않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면서 “이를 위한 조치로 과징금 대납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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