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감독‧제작자‧작가 참여 상업영화 비율 크게 낮아…“여성 과소대표화는 산업생태계에 악영향”

지난해 10월 15ㅣㄹ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해운대구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에서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를 관람 후 관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 오른쪽에는 배우 공효진, 왼쪽에는 배우 엄지원과 미씽의 이언희 감독. / 사진=청와대

지난해 10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식행사인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행사에 앞서 관람한 영화는 ‘미씽: 사라진 여자’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성 문제를 두 여주인공 지선과 한매가 제대로 보여줬다”는 감상평을 내놓기도 했다.

‘미씽’은 주인공 뿐 아니라 연출자도 여성(이언희 감독)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공효진은 이듬해에 역시 여성 연출자(이주영 감독)의 작품인 ‘싱글라이더’에 출연해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계 속사정을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상업영화 제작현장 내 성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2017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는 처음으로 ‘한국영화 성(性)인지 통계’가 실렸다. 영화현장과 관객들의 성평등을 향한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라는 게 영진위 측 설명이다. 집필자는 조혜영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다.

이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총제작비 10억 원 이상이거나 최대 스크린 수가 100개 이상인 조건에 해당하는 영화는 평균 73편이다. 그런데 이중 여성이 감독한 상업영화는 평균 5편(6.8%)에 그쳤다. 이를 두고 보고서는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여성감독 비율이 47%(52명)에 이르렀다는 것을 고려해봤을 때 이는 매우 비정상적인 수치”라고 꼬집었다.

제작자 사회는 그나마 사정이 좀 더 낫지 않을까. 당장 국내 대표적인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나 지난해 ‘남한산성’을 내놓은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가 떠오른다. 정작 여성의 비율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여성 제작자가 참여한 상업영화는 평균 16.2편(22.2%)에 그쳤다. 또 여성 작가가 참여한 상업영화 비율도 겨우 30%를 넘었다. 감독 비율보다야 높지만 성불균형이라는 지적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수치다.

상업영화 시장 내에서 여성의 과소대표화는 비단 업계 내 성비불균형 이슈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가 한국 영화의 생태계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조 프로그래머는 “남성들이 집단으로 주연을 맡는 소위 ‘브로맨스’ 영화를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여성혐오적 콘텐츠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면 시장도 점차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고 확장하는데 실패할 뿐만 아니라 기존 관객들을 붙잡아 둘 동력도 잃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젠더 이슈’는 국내 영화 시장서도 본격적으로 공론화의 테이블에 오른 모양새다. 지난해에는 한 상업영화가 여성을 대상화하고 객체화하는 카메라의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는 잇따르는 논란 끝에 흥행에 참패했다. 손익분기점(BEP)을 훌쩍 웃돌아 흥행에 성공한 또 다른 상업 영화도 여성 캐릭터를 종속적으로 다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어지는 성비불균형이 새로 업계에 진입하려는 후속세대에게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 영화계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키울 거라는 우려도 있다. 

 

조 프로그래머는 보고서를 통해 “영화 제작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핵심 인력의 여성 비율이 낮은 것은 자본이 대거 몰리는 장편상업영화에 유리천장이 공고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근거”라면서 “이는 영화산업 전문가와 대중에게 ‘감독은 곧 남성’이라는 옳지 않은 편견을 강화해 악순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을 깨는 사회적 캠페인과 인식제고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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