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 증거 인정 여부 촉각…박근혜·기소 피한 대기업 오너 가늠자 될 수도

최순실씨가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외 4인의 뇌물공여 등 항소심 15회 공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돼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몰고 왔던 최순실씨에 대한 1심 선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최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운명도 이날 함께 결정된다. 이날 판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기소되지 않은 대기업 오너들의 처벌 여부와 수위를 전망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13일 오후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신 회장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한다.

최씨가 받고 있는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강요 등 모두 18개다. 삼성 경영권 승계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딸 정유라씨 승마 훈련 지원비 등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53개 대기업이 774억원을 억지로 출연하게 한 혐의는 안 전 수석과 공범이다.

이날 판결은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대기업을 압박했다’라는 검찰의 주장이 처음으로 직접 판단 받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검찰은 그동안 국정농단 사건이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안 전 수석 세 사람이 공모한 것이라고 규정했지만,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정치보복’ ‘고영태의 기획설’ 등을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15가지 혐의 공범으로 묶여있다. 이날 판결로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결과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번 재판에서 최씨의 유무죄를 좌우할 핵심은 ‘안종범 수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난 사실과 이 과정에서 주고받은 내용이 적혀있는 이 업무수첩을 국정농단 사건의 확정적 증거로 보고 있다. 형사22부는 지난해 12월 장시호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1심에서 안종범 수첩을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재판부도 이 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해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반면 이 부회장의 항소심처럼 이 수첩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판부마다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는 있으나, 1심보다는 2심 판결이 더 권위가 있는 판결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수첩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가 기재돼있다는 자체만으로 대화 내용을 인정한다면 전문증거(간접증거)가 우회적으로 진실 증명의 증거로 사용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최씨에게 준 승마 훈련비용 36억3484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뇌물 혐의 모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최씨와 함께 판결을 선고받는다. 신 회장은 시내 면세점 재승인과 호텔롯데 상장을 바라고 박 전 대통령에게 K스포츠재단에 추가출연금 70억원을 뇌물로 바친 혐의를 받는다.

신 회장은 당초 재단 출연 강요 사건 피해자로 조사받았으나 이 70억원이 뇌물로 판단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신 회장이 2016년 3월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한 뒤 최순실씨 소유인 K스포츠재단에 45억원을 출연하고 70억원을 추가지원 했다가 돌려받은 사실에 대해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재승인과 관련한 대가성이 있다고 봤다. 그동안 롯데는 면세점 추가 승인은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하기 전부터 결정된 사안이라며 관련 혐의를 부인해 왔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해 12월 22일 그룹 비리 사건으로 별도 기소됐지만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실형을 피했다. 하지만 뇌물공여 혐의액이 70억원이 모두 유죄로 인정될 경우 실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동적 뇌물’이라는 특별감경인자로 집행유예가 선고된 상황에서 신 회장도 최악의 경우라도 실형을 피할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형사22부는 당초 신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을 지난달 26일로 결정했으나, 선고를 미뤘다. 법조계에서는 형사22부가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 결과를 참고하기 위해 선고일을 변경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 회장의 1심 결과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후원금을 내고도 기소되지 않은 다른 기업들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총 53곳으로 출연금 규모는 774억원에 달하는 데 이 중 삼성과 롯데만 재판에 넘겨졌다. 후원금 내역을 살펴보면 삼성 204억, 현대차 128억, SK 111억, LG 78억, 포스코 49억, 롯데 45억, GS 42억, 한화 25억, KT 18억, LS 16억, CJ 13억, 두산 11억, 한진 10억, 금호아시아나 7억, 대림 6억, 신세계 5억, 아모레퍼시픽 3억, 부영 3억 등이다.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2015년 8·15 사면 대가, CJ 이재현 회장도 특별사면 등으로 검찰 수사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밖에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선임 과정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검찰은 결론을 내지 않았다.

검찰은 다른 대기업 관계자들이 기소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사 인력과 시간의 한계 때문”이라고 수차례 밝히면서 향후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 진행된 선고공판 일반인 방청권 추첨식에는 66명이 응모해 30명이 재판을 직접 볼 기회를 획득했다. 이 부회장 1심 선고공판 방청에는 30석에 총 454명이 응모해 경쟁률 15.13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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