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 공사비 등 30억 회삿돈 대납도…조세포탈·횡령 혐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4년 1월 9일 부인 홍라희 여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 사장단 만찬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경찰이 삼성그룹 임원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82억원의 세금을 피하고 자택 공사비용을 회사에 떠넘긴 혐의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임직원 3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8일 이 회장과 차명계좌를 관리한 삼성그룹의 사장급 임원 A씨, 삼성물산 임원 B씨와 현장소장 C씨 등 총 4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조세)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과 A씨는 삼성그룹 임원 72명 명의로 차명계좌 260개를 만들어 4000억원대 자금을 관리하면서 2007~2010년 양도소득세 및 종합소득세 총 82억원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차명계좌 260개는 2008년 삼성특검이 찾아낸 차명계좌 1100여개와 다른 것이다. 삼성은 특검 이후에도 차명계좌 260개를 계속 유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차명계좌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관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회장은 2011년 이 차명계좌를 자진 신고하면서 국세청에 1300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회장이 고의로 2007년부터 2010년 양도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회피했다며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했다.

차명계좌를 빌려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방조죄 적용 여부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조세포탈의 개념을 알았는지가 중요한데 입건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며 “2008년 특검 당시에도 차명계좌 명의를 빌려준 이들을 입건하지 않는 등 방조범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에서 그룹에서 신분증 사본을 달라고 해 줬을 뿐이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수사에서 ​차명계좌에 든 돈이 회삿돈을 빼돌려 조성된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은 규명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증권계좌에 돈이 유입된 시기가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인데, 전표 보존 기간은 5년이다”라면서 “2007년 이전 발행된 수표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계좌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돼 자금 출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삼성 측은 경찰조사에서 차명재산이 이병철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회장과 삼성물산 임직원 등 3명은 또 2008년~2014년 삼성 총수 일가의 주택 인테리어 공사비를 삼성물산의 법인 자금으로 대납해 30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는다.

경찰은 인테리어 비용에 사용된 수표 등을 추적한 끝에 삼성물산 임원 B씨, 현장소장 C씨 등 2명이 회삿돈 30억원을 공사비로 낸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해 증거 인멸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인테리어가 진행된 건물은 이 회장의 자택,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등 삼남매 자택, 이 회장이 평소 사용하는 건물 등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삼남매에 대한 조사를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 자택에 사용된 공사비용은 총 3억원 미만이었다”면서 “인테리어 자료 등을 통해 확인한 금액이고, 집행 품의서나 삼성물산 공사자료가 없어서 입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에 대한 직접 조사도 이뤄지지 못했다. 경찰은 이 회장의 생존 여부와 진술 가능 여부를 확인했으나 의료진으로부터 생존해 있으나 진술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에는 기소의견으로, 횡령 혐의에는 조사불능이라는 이유로 시한부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경찰은 조세포탈 혐의와 관련해 이 회장에 대한 직접 조사 없이도 충분히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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